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의 탱크가 수십년간 포탑의 설계 결함을 방치한 탓에 취약점을 드러내고 있다고 CNN이 27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파괴된 러시아군 소속 T-72 탱크. /트위터 캡처

CNN에 따르면 벤 월러스 영국 국방부장관은 지난 25일 영국 의회에서 우크라이나 침공 후 약 9주간 러시아군이 약 580대의 탱크를 잃은 것으로 추산했다. 군사정보 사이트 ‘오릭스’는 이날 기준, 러시아군 전차 최소 300대가 파괴됐고, 279대가 버려지거나 손상·노획됐다고 분석했다.

소셜미디어(SNS)에서는 러시아군 탱크의 포탑이 우크라이나군이 쏜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에 맞고 폭발하는 모습이 마치 ‘깜짝상자(상자 뚜껑을 열면 스프링이 달린 피에로 같은 내용물이 튀어나와 상대방을 놀라게하는 장난감)’와 같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실제로 관련 영상에서는 미사일을 맞은 러시아 탱크의 포탑이 깜짝상자 처럼 2층 건물 높이로 튀어오르는 모습이 담겨있다. 군사전문가들인 이에 대해 “이같은 현상은 탄약고와 전차병 탑승 공간을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은 탓에 생기는 것으로 T-72와 T-80 등 러시아군 주력 전차 대다수에서 공통으로 드러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러시아 탱크의 특징은 일반 다른 국가의 탱크에 비해 포탑이 작고 납작하다. 평야가 많은 지형에서 포탄을 맞을 확률을 낮추기 위해서다.하지만 이같은 설계 때문에 포에 탄약을 신속히 공급하기 위한 자동장전장치도 차체 안인 포탑 하부에 있다.그러다 보니 전차 내부 공간이 좁아 방탄판으로 보호되는 별도의 탄약고를 마련하지 못하고 포탑 내부와 근처에 다량의 예비탄을 보관해야 한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약한 타격에도 연쇄 폭발 가능성이 높다.이런 문제는 이미 1991년 걸프전쟁 당시부터 알려진 사항이지만 이를 지금까지 방치한 것.

당시 이라크군 주력이었던 러시아제 T-72 전차는 미군 M1 에이브럼스 전차에 일방적으로 ‘학살’ 되다시피 했다. 이 과정에서 T-72 전차의 포탑이 피격될 때마다 대폭발을 일으키며 높이 솟아오르는 모습이 관찰됐다.

이 같은 설계결함의 최대 문제는 피격 시 전차에 탑승한 전차병의 생명을 보장하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점이다.군사 전문가는 “(서방 전차는) 정확히 피격해도 전차가 손상될 뿐 반드시 전차병이 죽지는 않지만 러시아 전차는 피격 시 1초 이내에 탈출 못 하면 끝장”이라고 말했다.

대지가 진흙으로 변하는 ‘라스푸티차’(Rasputitsa) 현상도 러시아군 탱크의 진격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라스푸티차는 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 지역 등에서 벌어지는 자연 현상이다. 보통 3월 말 해빙기와 10월 초, 가을 장마철에 토양이 진흙처럼 변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우크라이나는 국토의 80%가 경작이 가능한 비옥한 흑토지대이며, 비포장도로가 많아 라스푸티차 현상에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 라스푸티차가 일어나면 웬만한 자동차는 물론이며, 장갑차도 통행이 어렵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라스푸티차로 인해 러시아군의 트럭과 장갑차 등이 우크라이나 비포장도로에 갇히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포탑까지 진흙에 잠긴 탱크를 버리는 경우도 발생하면서 우크라이나 농부들이 트랙터로 이를 회수하기도 한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라스푸티차는 역사적으로 전쟁의 중요한 변수였다. 1941년 독·소 전쟁 당시 소련의 스탈린은 나치가 라스푸티차를 뚫고 침공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나치는 스탈린의 예상을 깨고 진격했다. 그러나 결국 나치군은 모스크바 전투에서 진흙탕으로 변해버린 대지 때문에 병력 이동과 보급에 차질을 빚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