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저물가 지속으로 엔화의 실질 가치가 명목 가치보다 더 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에 따라 일본 기업과 경쟁하는 한국 수출기업의 가격경쟁력 저하가 실제로는 눈에 보이는 엔화값 하락폭을 훨씬 상회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24일 국제결제은행(BIS)이 매달 발표하는 국가별 실질실효환율 집계를 보면 한국의 3월 실질실효환율(2010년 100 기준)은 102.06으로 4년 전인 2018년 3월(112.49) 대비 9.3% 떨어졌다. 같은 기간 일본의 실질실효환율은 75.44에서 65.1로 13.7% 떨어져 하락 폭이 더 컸다.

지난 20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화와 엔화를 정리하고 있다. /뉴스1

실질실효환율은 한 나라의 화폐가 다수의 교역상대국 통화와 비교해 어느 정도 실질 구매력이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로, 실질실효환율이 하락했다는 것은 수출품의 환율 경쟁력이 좋아졌다는 의미다.

실질실효환율과 달리 원/엔 명목환율은 2018년 3월 말 100엔당 1,001.4원에서 올해 3월 말 995.2원으로 0.6% 하락(원화가치 상승)하는 데 그쳐 사실상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실질실효환율에서 드러나던 수출 경쟁력 격차가 원/엔 명목환율에선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이는 한일 간 물가 상승률 차이에서 비롯된 차이다.

2018년 3월 이후 올해 3월까지 4년간 국내 소비자물가는 7.4% 오른 반면 일본 소비자물가는 1.9% 오르는 데 그쳤다.

3월 현재 엔화의 실질실효환율은 BIS가 관련 통계를 집계한 1994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4월 들어 엔화 약세가 가파르게 이어진 점을 고려하면 엔화의 실질실효환율은 추가 하락했을 가능성이 크다.

일본과의 수출경합도가 높은 석유화학, 철강, 기계, 자동차 등 업종의 경우 피해가 중장기적으로 커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는 지점이다. 서정훈 하나은행 연구원은 “우리 산업 구조상 일본과 경합도가 높은 분야가 여전히 많다”며 “엔화의 상대적 약세로 일부 업종에서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국내 통화정책도 엔화 흐름을 반영해 수행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