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우크라이나 위기의 근본 원인은 전적으로 미국과 서방의 패권 정책에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성 주유엔 북한대사는 1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긴급특별총회 2일차 회의에서 “미국과 서방은 다른 나라들을 향한 고압적이고 독단적인 태도에 심취해 있다”며 이 같이 주장했다.

그는 “미국과 서방은 법적 안보 보장을 제공해달라는 러시아의 합리적이고 정당한 요구를 무시하면서 더욱 노골적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진을 추구했다. 또 공격무기 체계를 배치함으로써 조직적으로 유럽의 안보 환경을 약화시켰다”며 “우리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리비아의 주권과 영토보전이 국제 평화와 안보라는 구실 하에 어떻게 미국과 서방에 의해 침해됐는지를 분명히 기억한다. 이들 국가를 파괴한 미국과 서방이 우크라이나 상황에 대해선 주권과 영토보전을 존중하라고 말한다”고 지적했다.

김 대사는 이어 “이는 전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미국이 개입하는 모든 지역과 국가에서 불화의 씨앗이 뿌려지고 국가 간 관계가 악화하는 것이 현재의 국제 질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계가 직면한 가장 큰 위험은 미국과 그 추종자의 압제와 제멋대로 식 행동”이라고 강조한 그는 “주권국의 평화와 안보를 위협하는 미국의 일방적이고 표리부동한 정책이 남아있는 한 세계 평화는 정착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대사는 이러한 이유로 북한은 러시아의 철군과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유엔총회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성 주유엔 북한대사가 1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유엔 긴급특별총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김 대사는 이날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총회에서 미국 등 서방의 책임론을 제기했다. /유엔웹티비 캡처

이번 유엔 긴급특별총회는 상임이사국의 거부권 행사로 인한 안보리 기능 마비에 대처하기 위한 회의 방식으로 1950년 한국전쟁 이후 11번째로 열렸다. 앞서 AFP통신은 이번 특별총회에서 발언을 신청한 국가가 100곳이 넘는다는 점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러시아군의 즉각적인 철수를 요구하는 내용의 유엔 결의안이 오는 2일께 표결에 부쳐질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안보리 결의와 달리 총회 결의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 다만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지는 국가 수는 국제사회에서 러시아가 얼마나 고립됐는지를 보여주는 척도로 받아들여질 전망이다. 서방 측은 찬성표가 100표를 넘길 것으로 보고 있으나 북한을 포함해 중국, 시리아, 쿠바, 베네수엘라, 인도 등 적지 않은 국가는 반대표를 던지거나 기권할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 측은 이날 총회에서 우크라이나 정부가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돈바스 지역 주민들에게 먼저 적대행위를 했고, 러시아는 그에 따른 자위권을 행사하는 것 뿐이란 논리를 되풀이했다. 바실리 네벤쟈 주유엔 러시아 대사는 “러시아의 행동이 왜곡되고 있다”며 “러시아는 이 전쟁을 끝내려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편 일각에선 북한의 이날 주장을 두고 ‘핵무장 명분 쌓기’라는 우려가 나온다. 우크라이나 측이 과거 미국 등의 안전보장 약속을 믿고 핵무기를 포기한 점을 후회한다고 밝힌 가운데 북한이 이를 반면교사 삼아 대(對)서방 시위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실제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인 지난달 27일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