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침공 소식이 알려진 직후인 24일 오전(현지 시각)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영상 메시지를 통해 국가 계엄령을 선포하고 예비군 소집 방침을 밝혔다. 이에 따라 18~60세 병력 3만6000여 명이 정규군에 합류해 최대 1년간 복무하게 된다.

<YONHAP PHOTO-1538>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방문한 젤렌스키 대통령 (마리우폴 AP=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운데)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동부 도네츠크 지역의 도시 마리우폴을 방문해 해안경비대 대원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제공] 2022.2.16 leekm@yna.co.kr/2022-02-17 21:12:30/ <저작권자 ⓒ 1980-202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이와 함께 “모든 안보·국방 요소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 우리는 강하다. 두려워하지 말라”며 불안해하는 국민을 달래는 데 주력했다.

코미디언 출신인 젤렌스키는 2015년 드라마에서 청렴한 대통령을 연기하면서 대중적 인기를 얻어 정치에 입문했다. 2019년 대선 결선투표에서는 73%라는 경이적 득표율로 당선됐다.

그는 취임 후 친미국·친서방 기조를 유지했고, 2014년 크림반도 사태 이후 악화된 러시아와는 거리를 두면서도 긴장 완화를 위한 대화 의지를 줄곧 표명해왔다. 지난해 8월에는 44국 대표를 수도 키예프로 불러 러시아 견제 성격의 국제협의체 ‘크림 플랫폼’을 창설해 외교 역량이 주목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위기를 타개할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고, 자신과 친한 측근들이 요직을 맡도록 해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앞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푸틴이 러시아 침공 소식을 발표하기 직전까지 러시아를 향한 ‘읍소’에 주력했다. 그는 24일 자정 무렵 긴급 TV 연설을 하고 “푸틴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했지만 결과는 ‘침묵’이었다”며 대화 결렬 소식을 전했다.

러시아를 향해서는 “우리의 주된 목표는 우크라이나의 평화와 우크라이나인의 안전”이라고 했다. 이어 “너무 늦기 전에 (전쟁 위기를) 멈춰야 할 때다. 러시아인들은 전쟁을 원하는가? 답변을 듣고 싶다”며 감정적인 호소를 쏟아냈다. 이 같은 ‘평화’에 대한 읍소는 전혀 먹혀들지 않았고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다.

결국 젤렌스키는 수개월 전부터 러시아의 전면적인 군사행동이 임박했다는 징후가 잇따랐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최우선 책무인 국민·국토 보호에 실패한 젤렌스키에 대한 책임론에서 자유롭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젤렌스키는 러시아 침공 직후 계엄령 선포 영상 메시지에서 “곧 다시 (국민들과) 연락을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트위터에 “유럽 정상들과 회담을 통해 반러시아 연대 결성을 논의했다”는 등 자신의 행적을 알리는 글을 올리고 있지만, 정작 불안에 떠는 국민들이나 군대 앞에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이미 전임 포로셴코 대통령 등 정적들은 젤렌스키 리더십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14년 친서방파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축출됐던 친러파 정치 세력이 푸틴의 비호로 다시 우크라이나 중앙 정치 무대로 등장할 가능성마저 점쳐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