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중국이 구상하고 있는 초거대 경제권 프로젝트 ‘일대일로(一帶一路)’에 맞서 최대 3000억유로(약 402조원) 규모의 개발도상국 인프라 투자를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를 넘어 남미, 아프리카 등지에 중국이 막대한 투자를 행사하며 영향력을 높여나가자 미국에 이어 유럽 역시 대응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29일(현지 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EU는 오는 2027년까지 EU 회원국을 비롯해 유럽 금융기관, 국가개발은행들의 자금을 끌어모아 주요 개발도상국에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단행한다는 방침이다. 각국의 디지털 전환을 비롯해 보건 시스템, 에너지, 교통, 교육, R&D 등 핵심 인프라에 투자를 단행한다는 방침이다.

중국의 ‘일대일로’ 계획. /조선비즈

중국은 앞서 현대판 실크로드라는 일대일로를 통해 해외 각국의 인프라 설립에 투자하면서 영향력을 강화해왔다. 일대일로란 중국 주도의 ‘신(新) 실크로드 전략 구상’으로, 내륙과 해상의 실크로드경제벨트를 지칭한다. 35년간(2014~2049) 고대 동서양의 교통로인 현대판 실크로드를 다시 구축해 중국과 주변국가의 경제․무역 합작 확대의 길을 연다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실제 지난 수년간 아시아, 아프리카에 위치한 다수의 개발도상국들이 중국 정부, 기업과 철도, 다리, 항만 건설 등의 계약을 맺었고 이는 중국 정부의 중요한 외교적 도구가 되고 있다고 FT는 분석했다. 대규모 투자와 함께 중국은 해당 국가들에서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게될 가능성도 높다.

이같은 중국의 해외 인프라 투자는 기존 서방 세계의 우방이었던 국가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데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특히 세계 각지에 연방을 형성하고 있는 영국의 경우 중국 자본에 의해 연방국과의 결속력이 느슨해질 수 있다는 불안감도 제기된다.

실제로 중국은 지난 2005년 이후 영국 연방국가 42개국에 한화로 1100조원에 가까운 금액을 쏟아부으며 영향력을 키워온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기업연구소(AEI) 집계에 따르면 지난 2005년 이후 중국은 42개 영연방 국가에 총 6850억파운드(약 1091조원)를 투자했다. 이를 계산해보면 영연방 국가에서 GDP 대비 중국 투자액이 차지하는 비율은 비회원국보다 3배 높은 수준이다.

경제적 투자가 중국의 국제정치적 영향력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것도 실증적 사례로 나타나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유엔 회원국 53개국은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중엔 영연방 왕국 16개 중 파푸아뉴기니, 앤티가 바부다가 포함됐다. 이들 나라는 각각 GDP의 21%와 60%를 중국에서 투자받은 바 있다.

FT는 현지 경제전문가와의 인터뷰를 인용해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결정할 당시 보리스 존슨 총리는 세계 각지의 영국 연방국가들과의 교역을 통해서 브렉시트 이후 불가피한 무역 손실을 메꾸려고 했지만, 중국이 해당 지역에서 영국보다 더 돈독한 관계를 구축해 선수를 쳤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EU 역시 중국의 자본에 의존하게 되는 개발도상국, 신흥국가들이 많아질수록 중장기적으로 유럽의 경제적 입지가 좁아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앞서 미국 역시 이같은 중국의 일대일로에 제동을 걸기 위해 세계 곳곳의 대형 인프라 프로젝트에 투자할 계획을 천명한 바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이 계획 중인 투자 대상 프로젝트는 5∼10개로 세네갈에 서아프리카 백신 생산 허브 마련, 신재생 에너지 공급망 구축, 여성 기업가가 보유한 기업에 대출 혜택 지원, 정보 격차 해소 프로젝트 등이 논의된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