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1998년 개봉한 영화 ‘아마겟돈’을 연상시키는 실험을 시작했다. 무인 우주선을 지구와 먼 곳에 있는 작은 위성과 충돌시켜 그 위성의 궤도를 바꾸는 실험이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나사는 23일(현지 시각) 오후 10시 21분 캘리포니아주 반덴버그 우주 기지에서 스페이스X의 팰컨9 로켓으로 무인 우주선 ‘다트(DART)’를 발사했다. 다트는 ‘이중 소행성 방향수정 실험(Double Asteroid Redirection Test)’의 줄임말이다.

냉장고 1대 크기의 다트는 내년 9월 말이나 10월 초 지구로부터 1100만㎞ 떨어진 곳에서 디디모스 소행성 주위를 도는 축구장 크기의 디모르포스 위성과 초속 6.6km의 속도로 부딪히게 된다. 충돌 과정은 이날 다트와 함께 발사된 초소형 관찰 위성 ‘리시아큐브’가 기록해 지구로 전송한다. 다트가 먼저 디디모스 소행성을 포착하고 돌진하면, 리시아큐브가 그 뒤를 쫓으면서 행적을 기록하는 식이다.

나사 측은 “무게 약 610㎏인 다트에게 디모르포스 위성을 파괴할 만큼의 힘은 없다”며 “살짝 찌르는 수준에 불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토머스 주버첸 나사 과학 담당 부국장은 “이번 실험은 지구 방어를 위한 첫 번째 시험”이라며 “다가오는 위협을 피하는 방법을 배우려고 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실험에 참여한 과학자 톰 스테들러 역시 “처음으로 인류가 우주에서 천체의 움직임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기대감을 밝혔다.

2021년 11월 23일 오후 10시 21분 미국 캘리포니아주 반덴버그 우주 기지에서 무인 우주선 ‘다트(DART)’가 실린 스페이스X의 팰컨9 로켓이 발사되고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

실험이 성공하면 디모르포스 위성의 속도는 살짝 느려지고, 공전 궤도 반경은 작아지게 된다. 현재 디모르포스 위성이 디디모스 소행성 주위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11시간 55분이다. 나사는 충돌 후 디모르포스 위성의 궤도 주기가 얼마나 변화했는지 지구에 있는 망원경으로 관측할 예정이다.

앤디 쳉 미 존스홉킨스대 응용물리학연구소 다트 조사팀장은 미국 CNN과 인터뷰에서 “실험이 성공할 경우 디모르포스 위성의 공전 시간은 73초가량 바뀔 것”이라며 “이번 실험은 언젠가 지구와 충돌할 수 있는 소행성이 발견될 때, 그 소행성의 주기를 바꾸기 위해서는 얼마나 큰 추진력이 필요한지 가늠해 볼 계기가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실험이 끝나면 후속 조사도 진행된다. 유럽우주국(ESA)은 2026년까지 탐사선 ‘헤라’를 현장에 보내 충돌 자국과 디모르포스 위성의 질량 변화 등을 분석할 계획이다. 나사가 주도하고 존스홉킨스대 응용물리학연구소가 참여하는 이번 실험에는 총 3억3000만달러(약 3922억원)가 투입된다.

무인 우주선 ‘다트(DART)’가 디디모스 소행성과 디모르포스 위성에 접근하는 장면을 일러스트로 표현한 모습. /미 항공우주국(NASA)

보통 우주에서 지구로 쏟아지는 소행성들은 그 크기가 작아 대기권에서 불타 없어진다. 이에 나사는 지금까지 지름 1㎞ 이상의 소행성들을 조사해 왔다. 그 결과, 앞으로 수 세기 동안 지구와 충돌할 만한 소행성은 없다는 결론이 나왔지만 보다 작은 소행성들은 다 조사하지 못한 만큼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 존스홉킨스대 행성학자 엘레나 애덤스는 “지름 160m의 소행성도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며 “맨해튼 정도 규모의 지역은 완전히 파괴될 것”이라고 했다. 미 의회는 2005년 나사에 지름이 140m가 넘는 지구 주위 소행성들에 대해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면 지구는 궤멸적 타격을 입는다. 지름 300m 이상 소행성이 충돌하면 대륙 차원, 지름 1㎞ 이상 소행성이 충돌하면 세계 차원의 피해가 예상된다. 실제 충돌이 발생할 확률이 높지는 않지만, 없는 것은 아니다. 약 6600만년 전 공룡 멸종의 원인을 설명하는 유력한 가설 중 하나가 소행성 충돌설이다. 1908년에는 시베리아에 소행성 조각이 떨어져 숲 2000여㎢가 사라지기도 했다.

2182년에 2700분의 1의 확률로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이 점쳐지는 소행성 베누. /미 항공우주국(NASA)

현재 나사가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보는 소행성은 베누다. 나사는 베누가 2182년 9월 24일 2700분의 1의 확률로 지구와 충돌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영화 ‘아마겟돈’은 소행성의 지구 충돌을 소재로 한다. 영화에서는 우주비행사들이 지구에 접근하는 소행성에 핵폭탄을 설치해 폭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