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나이키 등 미국 기업에 납품하는 중국 공장들이 신장 지역 노동자 고용을 피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0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중국의 인권 탄압 문제에 대응해 각국이 내놓은 제재가 압박으로 작용한 모습이다.

중국 후난성 창사에 위치한 렌즈테크놀로지 본사. /AP 연합뉴스

WSJ에 따르면, 애플 등 미국 기업에 스마트폰 터치스크린을 납품하는 렌즈테크놀로지는 지난해부터 중국 정부의 신장 지역 취업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고용한 노동자 2200명을 단계적으로 해고하고 있다.

2017년부터 신장 지역 노동자들을 고용해온 이 업체는 지난해 여름까지 총 400명 이상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현재 이 지역 출신 신규 노동자 고용도 중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기업들에 위생용 마스크를 납품하는 허베이하이신그룹도 더 이상 신장 지역 출신 노동자들을 고용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직원에 따르면, 이 업체는 지난해 9월부터 기존 노동자들과도 재계약을 하지 않고 있다.

나이키 운동화를 위탁 생산하는 태광실업의 중국 공장은 지난해 상반기 신장 지역 출신 노동자들을 해당 지역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업체들이 이처럼 태세를 바꾼 것은 미국 등 서방 국가의 제재 대상에 오를 수 있다는 부담감 때문으로 보인다.

앞서 미 국무부와 재무부, 상무부, 국토안보부, 무역대표부, 노동부는 지난 13일 중국 정부가 신장 위구르 자치구와 다른 지역에서 대부분 무슬림인 위구르와 카자흐, 키르기스족을 겨냥해 “끔찍한 유린”을 계속하고 있다며 “미국 기업과 개인이 직·간접적으로 이 지역과 연결된 공급망 및 벤처에 투자할 경우 미국 법을 위반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로부터 하루 만인 14일에는 미 상원이 신장 지역에서 생산되는 모든 제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위구르강제노동방지법’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이 법은 미 당국이 승인하지 않은 제품의 수입을 금지하고, 신장에서 생산된 것인지를 입증하는 책임은 수입업자에게 부과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신장산 토마토와 면화, 태양광 제품의 수입을 전면 금지한 바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1년 7월 5일 수도 베이징에서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인민 무장 경찰 특전 부대에 '대(對)테러 선봉 중대'라는 영예 칭호와 함께 깃발을 수여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권단체들은 중국 정부가 지원하는 신장 지역 취업 프로그램이 소수민족을 원래 살던 곳에서 몰아내기 위한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지역 소수민족은 해당 프로그램에 강제로 동원되는 과정에서 각종 사상 검증을 받으며, 이를 거절할 경우 처벌받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중국 정부는 이 프로그램이 빈곤 퇴치 정책의 일환일 뿐이라며 제기된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인권단체들은 “신장 지역 출신 노동자들은 당국의 처벌을 두려워해 자신들이 처한 노동 환경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피하려고 한다”며 고용 업체들에 감사 인력을 투입해 실태를 파악하는 것조차도 쉽지 않다고 전했다.

전략자문회사 올브라이트스톤브릿지그룹의 켄 제럿 선임고문은 중국 업체들의 이러한 움직임과 관련해 “도덕적으로나 비즈니스적으로나 옳은 결정을 내리길 원해서일 것”이라면서도 “이들은 미국과 중국 양쪽에서 정치적 압박을 받는 상당히 난처한 입장에 처해있다”고 짚었다.

2021년 6월 23일 스위스 로잔의 올림픽 박물관 앞에서 티베트·신장 위구르 출신 활동가들이 가면을 쓴 채 '인권 없이는 게임도 없다'(No rights No games)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2022년 개최 예정인 중국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인권단체들은 중국 업체들이 정부의 신장 지역 취업 지원 프로그램에서 발을 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평가하면서도 기존 노동자들이 충분히 보상을 받았는지, 단순히 더 열악하고 눈에 띄지 않는 업체로 이동한 것은 아닌지를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렌즈테크놀로지의 경우, 지난해 후난성 창사 소재 노동자들과 계약을 해지하며 1인당 1만~1만9000위안(177만~336만원) 가량의 위약금을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일부는 이후 직업 재훈련을 거쳐 저장성 진화 등 다른 지역으로 옮겨간 것으로 전해졌다.

업체들이 정부 지원 프로그램과는 거리를 두되, 개별적으로 취업을 희망하는 신장 지역 출신 노동자들은 적극적으로 고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마야 왕 중국 담당 선임 연구원은 이에 대해 “업체들은 공정한 고용 관행보다는 스캔들을 피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어 보인다. 한족도 노조 결성이 어려운 형국에 신장 지역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기란 더더욱 어렵다”고 지적했다.

중국 신장 지역의 면화 생산 현장. /신화 연합뉴스

당초 중국 업체들은 원활한 소통 등을 이유로 소수민족 고용을 꺼렸으나,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지원 정책을 펴면서 신장 지역 노동자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공장에 고용된 노동자들은 보안 요원 및 간부와 함께 집단 이송됐으며, 개중에는 포로 수용소에서 곧장 옮겨지는 경우도 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신장은 19세기 중반 청나라의 통제력이 약해지면서 독립해 동튀르키스탄 공화국이란 이름으로 몇 차례 건국했으나, 1949년 중국에 강제 병합된 곳이다. 중국 정부는 이곳에 ‘재교육 센터’를 여럿 세우고 위구르족 등을 대상으로 고문과 실험을 자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콜로라도대 대런 바일러 교수는 지난 5월 영국 BBC와 인터뷰에서 “위구르족은 주기적으로 DNA 표본을 제공해야 하고, 디지털 스캔을 받아야 한다. 정부가 원격으로 자신의 연락처와 문자 메시지를 수집할 수 있는 앱도 스마트폰에 설치해야 한다”며 이 모든 정보는 당국의 통합데이터시스템(Integrated Joint Operations Platform)에 입력돼 관리들이 위구르족의 ‘의심스러운 행동’을 판단하는 데 쓰인다고 말했다.

당국은 최근 위구르족의 집마다 QR 코드를 부착해, 수시로 가족이 아닌 사람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으로도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