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이르면 10일(현지 시각) 대만의 카운터파트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 중단됐던 대만과의 무역투자협정(TIFA) 재개를 논의할 것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9일 보도했다.

TIFA는 자유무역협정(FTA)의 전 단계다. 체결시 미국이 대만을 국가로 인정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는 지금처럼 미국 관료와 정치인이 대만을 오가고, 대만에 무기를 팔고, 미군 전투기와 군함을 대만해협에 투입해 결속을 과시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여서 중국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중국 정부는 이미 지난 8일 “미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대만과의 모든 공식적 왕래를 즉각 중단하라”며 “대만 독립분열 세력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2021년 5월 12일 미국 워싱턴DC 연방 의사당에서 상원 금융위원회 주최로 열린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과 대만이 공동 추진 중인 TIFA 협상은 1994년부터 시작됐던 것으로 미·중 관계의 변화에 따라 중단과 재개를 반복해왔다. 최근에는 트럼프 미 행정부가 중국과의 무역 협상에 집중한다는 명목 하에 협상을 중단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이에 지난해 8월 미국과 대만 간 FTA가 필요하다며 TIFA 협상 재개를 미국 정부에 공식 요청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응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상황이 역전됐다. 오히려 미국 측에서 협상 재개를 서두르는 모습이다. 이는 세계적인 반도체 품귀 사태 속에서 대만의 전략적 가치가 높아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TIFA 협상에 관한) 양국 간의 대화가 시작돼야만 한다”는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발언이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한다. 블링컨 장관은 지난 7일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자세한 건 USTR이 더 잘 알겠지만, 미국은 현재 대만과 무역 협정에 관한 대화를 나누고 있고 곧 어떤 틀에 대한 합의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워싱턴 주재 대만 대표부는 곧바로 성명을 통해 그의 발언을 확인하고 “(TIFA가) 양국 간 무역관계의 진전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화답했다.

아시아 전문가인 보니 글레이저 독일마셜펀드(GMF) 연구원은 블링컨 장관의 발언으로 미국과 대만 간 TIFA 타결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짚었다. 그는 8일 미 정치전문매체 더힐과의 인터뷰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고위 관료들은 USTR에 관련 회담을 열도록 독려해왔고, 대만도 이같은 회담의 조속한 개최를 바라고 있다”며 차이 대만 총통이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 규제 완화를 추진하는 등 사전 작업을 해왔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미국은 대만에 돼지고기 수입 규제를 완화할 것을 줄곧 요구해왔다. 트럼프 행정부가 2017년 대만과 TIFA 협상을 중단한 또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차이 총통과 대만 집권당인 민주진보당은 이를 이용해 오는 8월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시행할 예정이다.

우자오셰 대만 외교부장이 2021년 4월 14일 대만 타이베이에 도착한 크리스 도드 전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과 국무부 부장관을 지낸 리처드 아미티지, 제임스 스타인버그 등 미국 대표단을 영접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중국은 미국과 대만이 TIFA에 이어 FTA까지 체결할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것이 선례가 되어 영국 등 다른 국가도 향후 대만과 무역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중국 국방부가 블링컨 장관 발언 직후 대만과 마주한 동부 해안 일대 군부대들이 대규모 실탄 포사격 훈련을 벌인 사실을 공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당시 소식을 전하며 “(미국은) 인민해방군이 대만 문제에서 (미국보다) 압도적인 군사적 이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타임스는 같은 날 별도의 기사에서 “대만을 이용해 중국에 도발하겠다는 미국의 전략이 무역과 경제 분야로까지 확대됐지만, 대만의 중국 본토 수출은 지난해 전체의 43.9%를 차지했다”며 “차이 정권이 대만 경제를 중국과 분리하려는 시도는 부질없다”고도 평가절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