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항공기 업체 보잉의 추락이 경제적 손실로 가시화됐다. 최근 분기발표에서 보잉은 순손실 총액을 공개했는데, 손실액 자체는 시장 예상보다는 적었다. 하지만 보잉의 최대 매출을 내주던 737맥스의 출하량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현금 소모가 커졌고 보잉은 결국 보유 현금을 40억달러 가까이를 날린 것으로 확인된다.

24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보잉은 분기별 실적 발표에서 3억5500만달러(약 4880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다만 순손실 규모가 주당 1.13달러로 시장 예상치였던 주당 1.63달러보다는 적은 편이었다. 보잉의 1분기 총수입은 1년 전에 비해 7.5% 감소한 165억7000만 달러(22조7500억원)를 기록했다.

보잉의 777X기종. /연합뉴스

특히 보잉의 주력 매출이 나오던 민간항공기 부문에서 지난해 1분기 67억 달러에서 올 1분기 47억 달러로 매출이 크게 줄었다. 항공기 인도 대수는 같은 기간 130대에서 83대로 급감했다. 1분기 영업손실은 11억 달러로 1년 전 6억1500만 달러에 비해 2배 가까이 불어났다. 다만 방산 부문에서는 흑자를 냈다. 지난해 1분기 2억1200만 달러 적자에서 올 1분기에는 1억5100만 달러 흑자로 돌아서면서 3억6300만 달러 정도 개선됐다.

이날 보잉 실적 발표의 핵심은 보유 현금 증발이었다. 보잉은 항공기 출하가 줄어들면서 현금 40억달러(약 5조원)를 까먹었다. 규제당국의 압력으로 인해 보잉은 베스트셀러 기체인 737맥스를 생산하는 워싱턴주의 렌턴 공장 생산 속도를 늦췄다. 당국은 보잉에 다음달 말까지 해당 기체의 문제 해결 방안을 제출하라고 요구한 상태다. WSJ는 출하가 줄어들다 보니 이미 계약한 항공사들의 납기 요구를 맞추지 못했고 현금 보상도 해주게 됐다고 전했다.

이날 신용평가가 무디스는 보잉의 무담보 회사채 신용등급을 투자등급 가운데 가장 낮은 Baa3 단계로 강등시켰다. 무디스는 보잉이 2026년까지 지속적인 현금흐름 압박을 받을 것이라면서 이 때문에 추가로 회사채를 발행해야 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보잉이 항공기 동체를 만드는 스피릿 에어로시스템스를 다시 인수하려면 대규모 자금이 필요해 회사채 발행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날 보잉의 주가는 개장 전 3% 넘게 올랐다가 실적 발표 후 다시 떨어지면서 2.87% 하락한 164.33달러로 마감했다. 보잉의 주가는 올해 초 알래스카 항공 사고 이후 절반 가까이 쪼그라든 상태다. 지난 1월 보잉이 납품한 알래스카 항공의 737맥스 기종은 비행 중 문짝이 뜯어져 나가고 동체에 사람만한 구멍이 뚫리며 비상 착륙했다. 지난해 12월 263달러였던 보잉 주가는 이날 기준 164.33달러를 기록했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표시된 보잉 로고. /로이터=연합뉴스

그러나 보잉의 악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미국 항공규제 당국은 보잉의 또다른 여객기 787 드림라이너의 동체 부문들이 제대로 고정되지 않아 수천번의 운항 뒤에는 비행 중 분리될 수 있다는 내부 고발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보잉사에서 드림라이너 업무를 했던 엔지니어인 샘 살레푸어가 연방항공청(FAA)에 문건을 보내 드림라이너의 사고 위험을 알렸으며 NYT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내용을 설명했다고 밝혔다. FAA 대변인은 살레푸어의 주장을 조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이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다.

특히 알래스카항공 사고 배경이었던 동체 결함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보잉은 항공기 동체 제작업체 스피릿에어로시스템즈의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무디스가 보잉의 신용등급을 강등한 데는 이런 이유도 포함된다. 무디스는 보잉의 신용등급을 강등하면서 실적이 부진하고 당장 인수를 위한 현금이 부족한 보잉이 회사채를 급격하게 발행할 가능성이 높아 앞으로도 유동성 위기가 나타날 것임을 지적했다.

스피릿에어로시스템즈는 20년 전 보잉에서 분사됐는데, 최근의 품질 결함 문제로 그룹 내 편입을 검토하고 있는 회사다. WSJ는 지난달 2일 스피릿에어로시스템즈가 여러 전략적 옵션들을 검토해 보잉과 인수 예비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잉은 여객기 결함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스피릿으로부터 받은 737맥스 동체에 렌턴 공장 직원들이 문짝을 고정하면서 박아야 할 볼트들을 빼먹었다는 점을 발견했다. 보잉과 스피릿이 따로 제작해 조립하는 복잡한 공정을 줄이기 위해 인수를 결정한 것이다.

연이은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고 연말에 물러나게 되는 데이브 칼훈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우리는 일시적으로 힘든 순간에 처할 것”이라며 “낮은 출하율은 고객과 재무 상태에 치명적일 것이지만, 안전과 품질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금 흐름 위기에 대해 보잉 경영진은 “유동성 수준을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필요할 경우 추가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