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가격이 연일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는 가운데, 중국 투기 세력이 금값 상승세를 부추긴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최근 지정학적 불안이 고조되며 안전 자산인 금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중국 투기꾼들의 엄청난 베팅이 금 가격을 더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21일 서울시내 한 금거래소의 골드바 모습. /뉴스1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23일(현지 시각) 기준 중국 상하이선물거래소(SHFE)에서 금 선물 매수 포지션은 29만5233계약으로 폭증했다. 금으로 환산하면 295톤(t)에 해당한다. 이는 중동에서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기 전인 지난해 9월 말 이후 거의 50% 증가한 수준이라고 FT는 전했다. 앞서 이달 초에는 금 매수 포지션이 32만4857계약으로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한 바 있다.

FT에 따르면 선물거래업체 종차이선물(Zhongcai Futures)은 금 선물 50톤이 넘는 규모를 매수할 수 있는 강세 포지션을 확보했다.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40억 달러(약 5조5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보유한 금의 2%에 해당하는 규모다.

또한 FT는 지난주 중국 상하이선물거래소에서 거래된 금 규모는 130만 로트(Lot)로, 지난해 평균의 5배 이상을 기록했다고 전했다. 1로트는 통상 100온스를 뜻한다.

시장 전문가들은 중국 투기 세력의 강한 매수세가 금값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투기 세력은 금을 사고파는 것으로 이득을 취하는 비상업 거래자들로, 은행이나 수출·수입기업과는 비교된다.

세계금협회(WGC) 수석 전략가인 존 리드는 “레버리지 선물 시장의 단기 거래자들은 가격을 빠르게 높이거나 낮출 수 있다”면서 “중국 투기꾼들이 말 그대로 금 가격의 목을 움켜쥐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런 상황은 아시아의 금 시장에 대한 영향력이 서방을 넘어서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는 평가도 나온다. 전통적으로 이쪽 분야는 서구 투자자들이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존은 “신흥시장은 수십 년 동안 가장 큰 최종 소비자였음에도 서구의 빠른 자금 흐름으로 가격 결정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면서 “하지만 이제는 신흥시장의 투기 자금이 가격 결정력을 발휘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라고 평가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6월 인도분 금 선물 가격은 이달 들어 7% 넘게 상승했다. 지난 12일에는 금 선물 가격이 온스당 2444달러를 기록하며 사상 처음으로 2400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현물 가격도 온스당 2431달러를 기록하며 사상 최고가를 갈아치웠다.

중국에서는 일반인과 펀드 투자자, 선물거래자뿐만 아니라 중앙은행인 인민은행까지 금을 적극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중국 부동산 위기가 이어지는 데다가 주식시장 변동성도 크게 나타나면서 안전자산인 금이 인기 투자처로 떠올랐다. 중국 인민은행은 각국 중앙은행 가운데 금 매입에 가장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 부문에서만 지난해 기록적인 양을 매입했고, 올해 매입량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