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확대로 시작된 정부와 의사단체의 대립이 지속되는 가운데 디지털 진료와 의료 인공지능(AI)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비대면 진료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됐지만 그동안 의사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왔다.

비대면 진료 반대의 근거는 환자의 안전이었다. 확실하게 자리잡지 못한 AI가 잘못 진단하면 환자에게 더 큰 위험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전공의 파업이 이어지자 결국 지난 2월 정부는 보건의료재난 경보를 최고 단계 ‘심각’수준으로 격상하고 비대면 진료를 전면 확대하기로 했다. 정말 의사들이 우려한만큼 AI 진료와 의학이 못 믿을 수준일까.

AI가 진단하는 미래의 의료 기술 일러스트

◇의사 면허 시험도 척척 통과한 AI, 말하는 것만 들어도 치매 판단한다

해외에서 의료 AI를 바라보는 시각은 우려가 아닌 기대 수준이며, 훨씬 효율적 업무와 큰 경제적 가치를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의료 AI를 전 세계에 배포할 경우, 미국에서만 연간 의료비 지출 총액의 2000~3000억 달러를 절감해 현재 연간 4조5000억 달러(또는 GDP의 약 17%)에 달하는 돈을 절약할 수 있다. 또 2030년까지 전 세계에 거의 1000만 명에 이르는 의료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예측되고, 이미 매년 약 80만명의 미국인이 오진의 피해를 경험하고 있다는 통계가 집계됐는데 해당 매체는 AI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썼다.

AI를 통한 진료도 이미 일반 전문의의 수준과 비슷하거나 뛰어넘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표적인 예로 오픈AI의 챗GPT는 미국과 일본의 의사 면허시험을 통과했다. 지난해 1월 챗GPT는 미국 의사면허시험(USMLE)에서 생화학, 진단추론, 생명윤리 등 3개 과목에서 52.4∼75.0% 정답률을 내 합격권에 들었다. 또한 챗GPT는 말하는 패턴만으로도 초기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80%의 정확도로 선별했다.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 퀄컴연구소 존 에이어스 교수팀에 따르면 의사와 챗GPT 중 진단의 질과 공감도 모두 챗GPT 쪽이 우수하다는 연구 결과를 지난해 5월 발표한 바 있다. 연구진은 무작위로 선정한 동일한 내과 분야 질문에 이들이 도출한 답변을 전문가에게 비교 평가하게 했는데, 어느 것이 의사의 답변이고 어느 것이 챗GPT의 답변인지 알 수 없도록 블라인드 처리했다. 그 결과 전체 전문가 평가 중 79%가 챗GPT의 진단이 의사보다 우수하다고 평가했다.

실제 의료현장에서 AI는 의료영상 판독과 의료기기에 알고리즘을 접합해 환자의 이상징후를 실시간으로 의사에게 알리는 등 다방면으로 활약하고 있다. 특히 영상촬영 결과물 분석 쪽의 진보가 두드러지는데, X-ray, MRI, CT, 초음파 영상, 내시경 영상이나 이미지를 AI가 분석하고 사용자에게 질환 발생 여부를 분석한다. 다만 현장에서 AI는 보조적인 수단일 뿐, 아직 의사를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 질환마다 AI의 판별과 정확도가 큰 차이를 보여서인데, 예를 들어 초기 유방암 검진율은 정확도가 90%에 육박하지만, 기흉에 대한 판독 정확도는 60%에 불과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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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걸리는 신약 개발도 AI 덕분에 속도↑...“그래도 넘어야 할 장애물 많아”

제약 분야에서도 AI가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특히 신약 개발 시 AI 데이터 마이닝과 표적 분자의 구조 분석 등을 통해 신약 개발 과정에서의 정확성과 예측성을 향상하고 속도를 높일 수 있게 됐다. 대표적으로 해외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와 노바티스가 개인 맞춤형 황반변성 치료제, 세포 및 유전자 치료제 개발을 마치고, 약물 디자인 등을 AI로 활용하기 위한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한 상태다. 국내에서는 동아제약, 한미약품 등 제약기업들이 AI 기술기업들과 연달아 업무 협약을 맺었다.

알파고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 역시 제약분야에서 AI의 확장성을 강조한 바 있다. 허사비스 CEO는 올해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2024)에서 “범용인공지능(AGI)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확장성이 높은 것으로 확인된 만큼, 2~3년 내 인공지능(AI)이 설계한 약을 병원에서 보게 될 것”이며 “AI는 신약개발에 평균 10년이 걸리는 것을 수개월 정도로 단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AGI란 컴퓨터로 사람과 같은 또는 그 이상의 지능을 구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의료 서비스에서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할 장벽이 많다. 특히 의료와 제약, 바이오라는 분야는 사람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기에, 아직 드러나지 않은 AI의 오류나 실수가 인간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AI 의료의 장벽에 수많은 걸림돌 중 대표적인 것은 의료 빅데이터다. AI 답변은 가능한 한 많은 데이터가 입력될수록 정확도가 올라간다. 그러나 의료데이터는 환자의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나라에서 의료 데이터는 파편화되어 있으며 엄격한 규제를 받는다.

로버트 슈멀링 하버드 의대교수는 지난달 27일 ‘하버드 헬스 퍼블리싱’에 실은 글을 통해 “정확성에 대한 확실한 검증과 의료 전문가 감독 없이 환자들이 AI 답변에 의존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UCSD 퀄컴연구소 연구팀의 결과 역시 실제 정확성에 대한 논의는 빠져있다. 챗GPT에게 직접 물어봐도 (자신의 진단보다는) 의사가 낫다고 답변했다”고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AI도입으로 불거질 비용 절감 이슈와 혁신을 따라가지 못할 정부 규제 당국도 걸림돌로 꼽았다. 현 의료 체계는 서비스 개선에 초점이 맞춰져있지만 AI 도입시 비용과 복잡성이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코노미스트는 이같은 걸림돌에도 불구하고 AI를 사용할 경우 얻을 수 있는 방대한 이점이 있기 때문에 극복해야 할 필요성은 분명하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