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기간 공급망 차질을 겪은 세계 경제가 미중 갈등으로 상징되는 지정학적 불안요인까지 겹치면서 교역 구조의 대변화기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물류대란이 한창이던 지난 2021년 11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롱비치 항구에 컨테이너들이 쌓여있는 모습. /트위터 캡처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최근 공급망은 세계화를 가속화한 중국의 지난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가장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흐름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변화의 양태로는 ▲생산과 소비 공간의 간격을 줄이는 지역화 ▲원재료나 부품 공급처의 다양화 ▲창고 관리에서부터 조달 결정까지 이르는 자동화 등이 꼽힌다. WSJ는 구체적 사례로 성장세인 인도와 멕시코의 제조공장이나 캐나다와 스웨덴의 광산 등을 꼽았다. 애플은 일부 스마트폰 제조 라인을 중국에서 인도로 옮겼고, 완구 업체인 마텔은 멕시코의 제조설비를 늘렸다.

표면적으로는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의존도 완화가 눈에 띈다. 컨설팅 회사 커니의 간부인 패트릭 판덴보서는 “중국에서 벗어나 다수의 공급망을 구축하는 작업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중국 제조업체인 하이센스마저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멕시코에 공장을 차렸다.

다수의 새 공급망은 기존 모델보다 비용적인 효율성 면에서는 떨어지지만, 미래에 발생할 수도 있는 공급망 차질의 위험도를 관리하려는 목적이 강하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불거진 공장 가동 중단과 물류난 때문이란 것이 WSJ의 분석이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은)이 지난 2월 발표한 공급망 스트레스 지수에 따르면, 지난 2020년 4월 스트레스 지수는 2009년 금융 위기 이후 회복기에 도달한 수준의 두 배까지 치솟았다가 올해 초에야 전형적인 수준으로 떨어졌다.

특히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해 온 중국이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거의 폐쇄되다시피 하면서 세계 공급망은 큰 차질을 빚은 바 있다.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미국 대형 유통업체 타깃에서 임원을 지낸 컨설턴트 릭 개브리얼슨은 “위험 최소화와 비용 최소화를 놓고 고민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판덴보서도 “재무적 관점에서 구축된 공급망을 (위험에 대비해) 중복적 공급망으로 재구축 중”이라고 했다.

존슨앤존슨의 제약 부문 최고 조달 책임자인 하이디 랜드리는 지난 3월 의료 제품 회사가 팬데믹 이후 글로벌 공급망의 위험을 더 잘 측정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지속적인 공급 기반을 유지하고 위험을 관리하여 생명을 구하는 의약품과 장비에 대한 전 세계적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탄소 중립을 위한 각종 규제가 확대되는 점도 생산지와 소비지의 이동 간격을 줄이게 하는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개브리얼슨은 “지속가능성 이슈는 비용과 복잡성을 증가시킨다”고 했다.

WSJ는 기업 공급망 전략에서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적시생산’(JIT·Just In Time) 방식의 후퇴라고 전했다. 적시 생산은 부품 재고를 최소화해 비용을 줄이고 생산 효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일본 토요타 자동차가 지난 1970년대 ‘도요타 생산 시스템’을 구축해 성공하면서 세계적으로 유연생산 등 유행어를 낳으면서 업종을 불문하고 퍼져나갔다.

하지만 팬데믹 기간 부품이 모자라 공장 가동을 중단한 쓰라린 경험 때문에 적잖은 기업이 효율성 못지않게 재고의 충격 완충 효과를 평가하는 기류라고 WSJ는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