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경제난에 처한 국가에 최소 2400억달러(약 311조원)를 지원해 구제금융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다만 중국이 제공하는 대출은 이자율이 높고 국가 재정 건전성을 헤쳐 부채 탕감 노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 블룸버그통신 등은 미국 윌리엄앤메리대 내 연구소인 에이드데이터의 자료를 인용해 중국이 2000년 이후 아르헨티나, 파키스탄, 나이지리아 등 22개국에 통화스와프로 최소 2400억달러를 제공했다고 보도했다. 통화스와프란 자국 통화를 상대 국가에 맡기고 돈을 빌려오는 계약을 말한다.

중국은 이미 중저소득 국가 구제금융 규모에서 미국을 제쳤다. 미국 재무부가 비교적 큰 규모로 실시한 구제금융은 2002년 우루과이에 지원한 15억달러가 마지막이었다. 반면 중국은 터키, 아르헨티나, 스리랑카 등 지정학적 거점이나 천연자원 보유국으로서 의미가 있는 나라에 구제금융을 집중 지원하고 있다.

지난 22일(현지시각) 러시아 모스크바 공항서 열린 배웅식에 참석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뉴스

중국이 세계 구제금융 제공에 적극적인 배경으로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내놓은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이니셔티브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블룸버그는 “중국 대출 증가는 전 세계 인프라 및 기타 프로젝트에 9000억달러(약 1168조원)를 지원하는 일대일로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WSJ은 “일대일로를 통해 경제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국제사회와 협력할 것”이라는 중국 측 정부 관계자들의 최근 발언을 전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제공하는 구제금융에 의존할수록 국가 재정 건전성은 취약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연구진은 “중국과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의 차이는 비용”이라며 “IMF 이자율은 평균 2%대지만, 중국 대출은 약 5%대”라고 했다. 또 대출 조건에 대한 투명성이 부족해 세계은행(WB) 등 국제 부채 감시 기관이 국가의 재정 상태를 평가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도 했다.

중국이 빚을 갚기 어려운 국가들에게 대출 기한을 연장해주는 점도 비판 요인 중 하나다. 블룸버그는 “중국은 채권국 그룹이나 IMF가 주도하는 부채 협상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고, 부채 탕감 대신 대출금을 갚을 시간을 더 주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카르멘 레인하트 전 WB 수석 경제학자는 “(돈을 빌린) 국가들에겐 매우 장기적인 부채 문제가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을 통해 중국은 위안화의 힘을 기르고 있다. 긴급자금의 기준 통화는 90% 이상이 위안화다. 즉 중국 인민은행과 맺은 통화 스와프 협정을 통해 위안화를 빌리는 부채 국가들은 빚을 갚기 위해 달러화를 쓰고, 자국 중앙은행에 위안화를 쌓아두게 된다. 실제 몽골 등 몇몇 국가는 과거 외환 보유고로 주로 달러화를 축적했지만 현재는 상당 부분을 위안화로 대체한 상태로 전해졌다.

독일 싱크탱크인 킬 세계경제연구소의 크리스토프 트레베슈는 일대일로의 비용이 명확해지는 상황에서 “또 다른 구제금융 큰손의 등장을 목격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