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프트뱅크 소유의 영국 반도체 설계업체 ARM이 미국 증시에 단독 상장한다.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에 이어 리시 수낙 영국 총리 등 3명의 영국 총리가 직접 나서 영국 런던증시 상장을 호소했지만, ARM은 미국에서만 기업공개(IPO)를 진행하기로 했다.

2일(현지 시각) 블룸버그는 소식통을 인용해 “ARM이 미국 뉴욕증시에 단독 상장할 것”이라며 “향후 런던증시에 2차 상장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ARM은 해당 보도 이후 “미국에서만 상장하는 것이 회사와 주주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며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런던증시에 2차 상장하는 방안을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리시 수낙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에 이어 리시 수낙 영국 총리 등 3명의 영국 총리가 반도체 설계업체 ARM에 영국 런던증시 상장을 설득했으나 ARM은 미국 증시에만 단독 상장하기로 했다. / 로이터

영국에 본사를 둔 ARM은 스마트폰의 두뇌인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설계 핵심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다. 애플 아이폰 등 전 세계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AP의 95%, 태블릿의 85%가 ARM 설계도를 사용한다. 삼성전자, 퀄컴, 애플 등이 ARM의 고객사다. 인공지능 개발에 필요한 AI 반도체와 서버용 반도체 설계도 세계 상위권이다. 전 세계에서 6000명, 영국에 3000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ARM은 ‘영국 기술 산업의 보석’으로 불린다.

소프트뱅크는 2016년 7월, ARM을 320억 달러에 인수했다. 일본 기업의 인수합병(M&A)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 소프트뱅크는 2020년 미국 반도체 회사 엔비디아에 400억 달러에 매각한다고 발표했지만, 각국 규제 당국의 승인을 받지 못해 지난해 초 결국 무산됐다.

앞서 소프트뱅크가 ARM의 뉴욕증시 상장에 관심을 보이자 영국 정부 관계자들은 소프트뱅크에 “ARM을 런던 증시 상장해달라”고 설득했다. 보리스 전 총리는 지난해 5월 소프트뱅크 경영진에 서한까지 보냈다. 하지만 보리스 전 총리가 사임하면서 소프트뱅크와 런던 증시 상장을 논의하던 장관들이 내각을 떠났고, 양측의 대화가 멈췄다. 이후 44일 동안 영국 총리로 일한 리즈 트러스 전 총리가 지난해 9월 회담 재개를 시도했었다.

이후 리시 수낙 영국 총리가 지난 1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ARM 최고경영자(CEO) 르네 하스, ARM 최고법률책임자 스펜서 콜린스, 앤드루 그리피스 재무부 장관이 지난달 다우닝가에서 만났다. 단, 손 회장은 화상으로 참석했다. 이날 수낙 총리는 ARM이 미국 뉴욕 증시는 물론 런던 증시에 동시 상장할 것을 설득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손 회장은 일관되게 미국 증시의 투자자 기반이 탄탄하며 평가가치를 높게 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미국 단독 상장을 주장해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ARM이 미국에 단독 상장하기로 하면서 수낙 총리에게 타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시장에선 ARM의 시장 가치가 최소 600억 달러를 지닐 것이라고 평가한다. 블룸버그는 “소프트뱅크가 골드만삭스, JP모건체이스, 바클레이 등을 놓고 3월 안에 IPO 주관사를 선정할 것”이라며 “올 여름 말 IPO 가격을 책정한 뒤 올해 말 IPO를 완료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