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의 지난해 4분기 경제성장률이 예상치를 웃돌면서 선방했다. 시장 우려와 달리 역성장은 면했다.

유럽연합(EU) 통계청인 유로스타트는 유로존의 지난해 4분기 국내총생산(GDP) 전년 동기 대비 1.9%, 전 분기 대비 0.1% 성장했다고 31일(현지시각) 발표했다. 이는 로이터통신이 집계한 시장 전문가들의 추정치인 1.8%, -0.1%를 모두 상회했다. 경기 침체로 유로존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할 것이란 전망이 빗나갔다.

프랑스 니스의 한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는 시민들 모습 / 연합뉴스

평년보다 따뜻한 겨울 날씨 덕분에 에너지 가격 부담이 예상보다 크지 않았던 점이 주된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경제학자들은 유로존이 곧 경기 침체에 빠지고 에너지 부족에 시달릴 것이라고 예측했다”며 “그러나 우려했던 것보다 따뜻한 겨울 날씨, 천연가스 가격 하락, 정부 지원 등에 힘입어 역성장을 면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유로존의 연간 경제성장률은 3.5%로 집계됐다. 연간 성장률은 미국(2.1%)과 중국(3%)보다 높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유로존 연간 경제성장률이 미국과 중국을 앞지른 것은 1974년 이후 처음이다.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인플레이션의 파급효과가 지역별로 다르게 나타나면서 성장률 순위도 기존 ‘중국·미국·유럽’에서 ‘유럽·중국·미국’으로 뒤바뀐 것으로 풀이된다.

유로존의 선방이 올해까지 지속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주요 외신의 평가다. WSJ는 “중국이 제로 코로나 방역 조치를 해제하면서 1위 자리를 되찾을 것으로 보이고,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과 중국보다 유로존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고 전했다. 실제 4분기 유로존 경제성장률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지난 3분기(0.3%)보다는 둔화됐다.

국가별로도 명암이 갈렸다.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독일과 이탈리아는 지난해 4분기 성장률이 각각 -0.2%, -0.1%를 기록하면서 역성장했다. 반면 프랑스(0.1%)와 스페인(0.2%)은 가까스로 불황을 피해갔다.

다국적 기업이 몰려있는 아일랜드가 지난해 4분기 유로존의 성장을 견인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아일랜드의 지난해 4분기 경제성장률은 3.5%를 기록했다. 아일랜드는 세금혜택을 통해 다국적 기업을 유치하는 경제성장 전략을 써왔다. FT는 “아일랜드의 기여 없이는 유로존이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일종의 착시 효과인 만큼, 이번 경제지표를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유로존의 경기 침체 우려가 소폭 누그러지면서 이번주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정책 방향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는 ECB가 내달 2일(현지시각) 열리는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2.5%로 0.5%포인트 인상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