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세계적인 현대미술 작가 데미안 허스트(57)가 자신의 작품 수천 점을 불태웠다고 BBC와 데일리메일, 더타임스 등 영국의 주요 매체들이 11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대체불가능 토큰(NFT)으로 팔린 작품 원본 수백점을 불에 태워버리기 시작했다.

데미안 허스트가 11일(현지시간) 런던의 뉴포프 스트리트 갤러리에서 대체불가능 토큰(NFT)으로 팔린 작품의 물리적 원본을 불태우고 있다.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허스트는 이날 영국 런던 뉴포트 스트리트 갤러리에서 자신의 점묘화 원본 수천 점을 매입한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직접 불태웠다. 허스트는 대형 TV 스크린으로 이 장면을 생중계했고, 사진기자들과 TV 촬영기자들도 몰려와 이 장면을 취재했다. 자신이 매입한 작품이 불태워지는 걸 지켜보던 사람들 중에는 환호하는 이들도 있었다. 자신의 작품을 불태우는 소감을 묻는 질문에 그는 “생각보다 기분이 좋다”고 답했다.

NFT란 블록체인 암호화 기술을 활용해 JPG 파일이나 동영상 등 콘텐츠에 고유한 표식을 부여하는 신종 디지털 자산이다. 디지털 작품의 진품을 인증하기 때문에 희소가치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지난해 투자 붐이 일었다. 하지만 최신 기술인 만큼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허스트는 BBC에 “많은 이들이 내가 수백만 달러 상당의 예술품을 불태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실물 버전을 불태워 물질적인 예술품을 NFT로 전환하는 작업을 완성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허스트는 지난해 자신의 첫 NFT 작품 1만점을 ‘경향’(The Currency)이란 제목의 컬렉션으로 묶어 판매했다. 허스트는 각 작품에 사인을 하고 NFT(non-fungible token)로 만들었는데, NFT를 한 점당 1700 파운드(약 266만원)에 판매하면서 그는 구매자들에게 그림 원본을 보유하고 NFT를 없앨지, 거꾸로 NFT를 보유하고 원본그림을 없앨지 선택권을 부여했다.

갤러리 측은 4851명의 구매자가 NFT 작품만 남겨지길 원해 불태우고 있다며 앞으로 더 많은 원본들이 불태워질 것이라고 밝혔다. 5149명은 물리적 원본도 남겨두길 바랐다.

런던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폴 로빈슨(39)은 허스트의 작품을 집안에 걸어 놓고 싶기도 했지만 NFT 작품의 가치가 향후 어떻게 될 것인지 ‘모험’을 택했다고 말했고, 작품 1점은 원본을, 1점은 NFT를 택한 크로아티아 출신 부부는 허스트가 “가능한 최선의 방식으로 뉴 미디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의견을 전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예술가로도 꼽히는 허스트는 1995년 런던 테이트 갤러리가 최고의 영국 작가에게 수여하는 ‘터너상’을 수상하여 현대미술 거장 반열에 올랐다. 허스트의 재산은 4억 달러(약 5700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허스트는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자극적인 작품 소재로 자주 논란의 중심에 섰다. ‘죽음’을 주제로 말과 양, 상어 등의 동물 사체를 통째로 포름알데히드 용액에 넣어 전시한 작품이 대표작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