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중앙은행이 대규모 국채 매입에 나설 만큼 파운드화 가치가 급락한 것은 영국 국력 쇠퇴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 여성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이미지가 들어간 5파운드 지폐를 들어보이고 있다.

29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NYT)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이미지가 들어간 영국 파운드화에느 한 때 달러보다 가치가 높다는 자부심이 깃들어 있었지만 그런 이미지가 훼손되고 있다면서 이 같이 전했다.

영국 옥스포드 대학의 세계화 및 개발 교수인 이언 골딘은 NYT에 “많은 사람들에게 여왕의 죽음은 영국 소프트 파워의 종식으로 인식되고 있다”며 “파운드화 가치가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것은 다차원적으로 봤을 때 이런 징표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골딘 교수는 이어 영국의 경제와 정치적 영향력 감소는 2016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투표 이후 가속화하고 있다면서 러시아를 제외하면 영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들 가운데 최악의 경제 지표를 나타냈다고 설명했다. “영국이 세계 경제 상위 10위권 밖으로 밀려나는 것은 시간의 문제”라고도 했다.

2015년 국내 출간된 ‘달러 트랩’의 저자인 에스와르 프라사드 미 코넬대학 교수는 “파운드화 가치가 최근 폭락한 것은 영국의 지위에 큰 타격을 줬다”며 브렉시트와 리즈 트러스 신임 정부의 새 재정 정책 등 잇단 실정은 파운드 가치 급락 및 런던의 글로벌 금융센터 위상을 위태롭게 했다”고 지적했다.

파운드화 가치가 급락한 것은 부유층에 대한 세금 감면과 더불어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소비자와 기업들을 돕기 위해 재정 지출을 확대한 것과 관련이 있다. 영국 중앙은행(BOE)이 금융시장의 중대한 위험을 경고하며 시장에 개입하면서 위기감은 고조됐다. BOE는 금융시장 안정화를 위해 하루 50억 파운드씩 13일간 650억 파운드 규모의 장기 국채 매입 계획을 밝혔다.

수세기에 걸쳐 영국의 지도자들은 파운드화 가치를 국가 경쟁력과 영향력의 표시로 간주하면서 그 가치를 보호하는 데 공을 들였다. 전문가들은 파운드화 가치 급락이 리즈 트러스 총리의 대규모 감세안과 관련이 있는 만큼 파운드화 가치를 되살리는 것 또한 트러스 정부에 달린 것으로 보고 있다.

이언 셰퍼드슨 판테온 매크로이코노믹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파운드화 폭락은 정책 선택의 결과이며 어떤 역사적 필연성은 아니다”라며 “이것이 암울한 시대인지 아니면 막간의 불운에 그칠지는 그들(트러스 정부)이 정책을 바꿀지 아니면 다음 선거에서 쫓겨날 것인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영국 정부는 지난 23일 450억 파운드 규모에 달하는 50년만의 최대 감세 정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줄어든 세수를 메울 방안을 공개하지 않고, 독립적인 평가도 하지 않아 영국과 세계 금융 시장이 요동쳤다.

감세안이 금융시장을 뒤흔든 일주일동안 침묵만 지켜왔던 트러스 총리는 최근 BBC 라디오 인터뷰에서 감세 정책 방향을 바꾸지 않겠다고 말했다. 트러스 총리는 “경제를 성장시키고, 영국을 움직이게 하고, 물가 상승에 대처하기 위해 긴급한 조치를 해야 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