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통화·금융시스템 전문가인 배리 아이켄그린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UC 버클리) 경제학과 교수가 26일(현지 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에 실은 칼럼에서 세계 각국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과 미국의 경기침체 가능성 고조가 달러 가치를 끌어내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배리 아이켄그린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UC 버클리) 경제학과 교수. /조선DB

국제통화기금(IMF) 선임 자문위원을 지낸 아이켄그린 교수의 연구는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 전 의장의 통화정책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미국 경제학계의 대표적인 ‘한국통’이기도 하다. UC버클리 한국학 연구소의 전임교수를 겸하고 있으며, 1987년 이후 한국 경제의 변화를 다룬 책 ‘한국 경제: 기적의 역사에서 지속 가능한 미래로’를 공동 집필하기도 했다.

올해 연준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 여파로 달러 가치는 급등했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자국 내 화폐 유통량이 줄어든다. 돈이 덜 풀리면 돈의 가치는 오른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은 달러 가치 상승으로 이어졌다. 달러가 강세로 돌아서면서 다른 나라의 통화는 상대적으로 가치가 떨어진다. 달러 몸값이 뛰자 전 세계적인 달러 수요 현상이 발생했다.

아이켄그린 교수는 “올해 초와 견주었을 때 달러의 다른 주요 통화 대비 가치가 10% 이상 상승했다”며 “인플레이션과 경제 성장을 본 연준이 다른 선진국 중앙은행보다 가파르게 금리를 올리면서 자본 흐름이 미국에 쏠렸다”고 진단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의 평균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지난 26일 107.19로 장을 마쳤다. 올해 첫 거래일인 1월3일 지수 96.21과 견주면 11.4% 증가한 수치다.

그러나 아이켄그린 교수는 연준의 금리 인상발 달러 가치 상승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추가 금리 인상을 예측하는 기대심리는 이미 시장에 반영됐다”며 “추가적인 금리 인상이 달러 가치를 끌어올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미국 달러화. /로이터통신

아이켄그린 교수는 달러 가치가 오르지 않을 이유를 두 가지 더 제시했다. 첫째로 유럽 중앙은행(ECB)을 비롯해 주요 선진국 및 신흥국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미국과 금리차가 좁혀지거나 자국 금리가 미국 금리를 앞서게 되면 자국 화폐 가치가 방어된다. 반대로 달러 가치 상승은 주춤해진다.

지난 21일 ECB는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렸다. ECB가 기준금리를 인상한 것은 11년 만의 일이다. 한국은행도 지난 13일 사상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렸다. 대대적인 금융 완화를 고수했던 일본은행마저 정책 노선을 바꿀 여지가 생겼다. 이달 일본은행에 매파적 색채의 정책위원 2명이 새로 취임한 것이다.

아이켄그린 교수는 “주요 선진국 및 신흥국은 금리 인상을 견딜 만큼 국가 재정이 튼튼하다”며 “이들은 인플레이션에 대처하기 위해 연준의 행보(금리 인상)에 맞추고 있다”고 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달러의 강세가 주춤해졌다”며 “앞으로 이런 현상이 몇 주나 몇 달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미국 경기침체 가능성이 커진 점도 달러 가치를 끌어내릴 수 있는 요인이다. 금리 인상은 인플레이션을 잡는 처방이다. 동시에 경기 위축을 동반한다. 아이켄그린 교수는 “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발생할 경기 위축이 부동산, 상거래, 기업 투자 등에 복합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지금의) 물가 상승은 잡힌다”고 분석했다. 그는 “인플레이션이 약해지고 경기가 위축된다면 연준도 금리 인상을 멈출 것”이라며 “그땐 달러 가치가 역전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연준의 정책이 경기침체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26일 CNBC 보도에 따르면 이달 CNBC가 경제 전문가 3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전문가 63%가 연준의 금리 인상이 경기침체를 유발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같은 날 피에르-올리비에르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기자회견에서 “현재 미국이 경기침체를 피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