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뱅크가 반도체설계 지적재산권(IP) 기업인 ARM을 엔비디아에 660억달러(한화 79조원)에 매각하려고 했던 ‘빅딜’이 결국 각국 규제당국의 반대로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업계 사상 최대 규모의 빅딜인데다 두 회사 모두 모바일, 그래픽 칩 부문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두 회사의 M&A는 업계의 주된 관심사 중 하나였다.

7일(현지 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는 반도체업계 소식통을 인용해 소프트뱅크와 엔비디아가 논의 중이던 660억달러(한화 79조원) 규모의 ARM 매각건이 규제당국의 허가를 받지 못하면서 실패했다고 전했다. 미국을 비롯해 영국, 유럽연합(EU)의 관계 기관이 모두 반대 의사를 밝혔으며 여기에는 인텔, 삼성전자, AMD, 퀄컴 등 주요 기업들의 의사가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가 영국의 반도체설계자산 기업인 ARM을 인수하려던 계획이 결국 규제당국의 반대로 실패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7일(현지 시각) 전했다. 사진은 엔비디아가 ARM 인수를 발표한 지난해 홈페이지 사진. /엔비디아 홈페이지 캡처

엔비디아의 ARM 인수는 첫 소식이 나온 이후로 업계의 거친 반발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래픽칩 시장의 지배자격인 엔비디아가 전 세계 모바일칩 설계 IP의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ARM을 인수할 경우 독과점에 대한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모바일용 시스템온칩(Soc) 설계 부문에서 ARM의 영향력은 크다. 애플 아이폰의 두뇌인 A시리즈를 비롯해 퀄컴의 스냅드래곤, 삼성전자의 엑시노스 등이 모두 ARM의 명령어 세트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직접 모든 칩 디자인을 하는 것보다는 ARM의 디자인을 기반으로 칩을 최적화하는 것이 비용 측면에서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ARM의 이같은 사업 모델이 엔비디아의 손아귀에 들어갈 경우 해당 기업들 입장에서는 큰 리스크를 떠안게 된다. 엔비디아는 인텔, AMD 등과는 그래픽, 서버용 칩 부문에서 직접적인 경쟁 관계에 있는데다 애플, 삼성전자, 퀄컴 등과도 차세대 사업 분야에서 잠재적인 경쟁관계로 점쳐지고 있다.

기술 생태계가 특정 기업 한쪽으로 쏠리면서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란 우려로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기업들도 다수 나왔다. 지난해 초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퀄컴 등 글로벌 기업들이 인수 반대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지난해 말에는 미 연방거래위원회(FTC)도 양사 간 합병작업에 제동을 걸었다. FTC는 ARM 인수를 추진하는 엔비디아를 상대로 인수반대 소송을 제기하며 “엔비디아가 ARM을 인수하면 스마트폰과 공장설비, 완성차업계 등 전세계 기술 기업이 사용하는 반도체 디자인에 대한 지배권을 갖게 돼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라고 배경을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에서 FTC를 이끌고 있는 리나 칸 FTC 의장은 그간 반독점 관련해 강력히 대응할 것을 피력해왔다. 민주당과 공화당 측 위원 2명씩으로 구성된 FTC는 만장일치로 엔비디아의 ARM 인수반대 소송 제기를 결정했다.

한편 이번 인수가 무산되면서 엔비디아는 ARM 대주주인 일본 소프트뱅크 그룹에 위약금으로 12억5000만 달러(약 1조4790억원)를 지급해야 한다. 단 이 위약금은 엔비디아의 ARM 인수 공식화 당시 이미 계약금의 일부로 소프트뱅크에 지급이 끝난 상태다.

FT는 관계자 중 한 명을 인용해 “소프트뱅크 그룹은 올 연말 이전에 기업공개(IPO)를 통해 ARM 지분을 내려 놓으려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단 상장은 영국이 아닌 뉴욕증권거래소를 목표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