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치웨이투수관(센트 라이브러리)이 판매하는 다바이투(화이트 래빗) 향수 제품. /김남희 특파원

“량바이카이(凉白开 L.B.K Water) 향수는 어릴 때 마시던 끓인 수돗물 맛을 담고 있다. 지역별로 물맛이 다르다는 데서 영감을 얻어, 베이징·상하이·광저우·청두의 물맛을 향으로 표현한 한정판 도시 시리즈를 출시했다. 량바이카이 향을 맡아본 많은 사람이 1980~90년대 유년 시절의 기억과 추억을 떠올린다.”

중국 베이징의 한 쇼핑몰 안에 있는 향수 가게 치웨이투수관(氣味圖書館 Scent Library 센트 라이브러리)의 직원이 한 말이다. 량바이카이는 2017년 출시 후 지금까지 이 브랜드에서 가장 많이 팔린 향수 제품이다. 치웨이투수관은 MZ 세대로 불리는 중국 20~30대가 열광하는 중국 향수 브랜드다. 2009년 베이징에서 뷰티 편집숍으로 시작 후 자체 향수 제품을 만들며 브랜드 인지도를 높였다.

중국 베이징의 한 쇼핑몰 안에 있는 치웨이투수관(센트 라이브러리) 매장. /김남희 특파원

이 회사의 또 다른 히트작은 중국 국민 사탕으로 불리는 다바이투(大白兔 White Rabbit)와 협업(컬래버레이션)해 만든 향기 제품이다. 대다수 중국인은 패키지의 하얀 토끼 그림만 보고도 어떤 향인지 짐작할 수 있다. 2019년 다바이투 설립 60주년 기념으로 제작해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출시 당시 다바이투 사탕 포장지에 향수 샘플을 포장해 팔기도 했다. 이 제품은 중국 알리바바그룹 산하 온라인 쇼핑몰 티몰에서 10분 만에 15만 개가 팔리는 기록을 세웠다.

레트로(복고) 문화 유행 속에 최근엔 ‘2B 연필’ 제품도 잘 팔린다고 한다. 패키지에 초록색 연필 그림이 그려져 있다. 치웨이투수관의 50㎖ 향수 제품 가격은 모두 285위안(약 5만4000원)으로, 외국 브랜드 제품보다 저렴한 편이다. 이 브랜드는 티몰에서 최근 3년간 향수 판매량 1위를 기록했다.

중국 향수 브랜드 치웨이투수관(센트 라이브러리)의 베스트셀링 제품인 량바이카이(L.B.K Water) 시리즈. /김남희 특파원

프랑스 샤넬·디올·YSL 등 외국 럭셔리 브랜드가 장악했던 중국 향수 시장이 새롭게 등장한 중국 향수 브랜드 위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치웨이투수관을 비롯해 싼투(三兔 Scentooze 센투즈), 관샤(觀夏 To Summer 투써머) 등 젊은 중국 브랜드가 중국 20대 Z 세대(1995년 이후 출생자) 소비자의 코와 마음을 사로잡았다. 재미있는 제품 디자인, 중국 문화 코드를 맞춘 마케팅, 비싸지 않은 가격이 Z 세대의 인정을 받았다.

특히 요즘 중국 젊은 층의 애국주의 소비 트렌드인 궈차오(國朝 중국풍) 열풍이 향수 시장에도 불고 있다. 중국인을 위해 중국에서 만든 ‘메이드 인 차이나, 메이드 포 차이나’ 브랜드가 중국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스토리텔링을 내세워 중국 향수 시장을 접수했다.

중국 베이징의 샤넬 매장. /김남희 특파원

중국 잉퉁그룹이 이달 초 발간한 ‘2021 중국 향수 산업 연구 백서’에 따르면,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중국 향수 시장에선 샤넬·에르메스·구찌 등 외국 럭셔리 패션·뷰티 브랜드들이 만든 고가 제품이 가장 많이 팔렸다. 그러나 젊은 층은 전 세계 사람 누구나 쓰는 이런 유명 브랜드 향수로는 스스로를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서양 배우가 진한 향수를 뿌리며 등장하는 외국 광고에 공감하지도 않는다. 중국의 국가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중국인이란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향과 이미지를 원하는 것이다.

고가의 럭셔리 브랜드를 선호한 중국 옛 세대와 달리, 젊은 세대는 단지 비싸다고 해서 지갑을 열지 않는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과시용 제품보다 본인 취향에 맞는 실용적이고 제값을 하는 제품을 산다. 그동안 중국 향수 시장엔 중간 가격대라 할 수 있는 향수 제품이 거의 없었다. 우리돈 수십만 원씩 하는 외국 고가 향수와 알코올 냄새가 코를 찌르는 저가 중국 향수로 극단적으로 나뉘어 있었다. 중국에서 향수를 비롯한 수입 화장품 가격은 높은 관세 때문에 다른 국가보다 비싼 편이다. 한 예로, 샤넬 대표 향수 N°5(넘버 파이브) 오 드 빠르펭 50㎖ 제품은 한국에서 15만8000원에 판매 중인데, 중국 티몰 공식 판매가는 1150위안(약 22만 원)으로 훨씬 비싸다.

중국 향수 브랜드 예서우칭녠(Young Beast)의 홍보 이미지. /예서우칭

이 빈틈을 파고 든 게 중국의 오랜 문화적 맥락을 파고들면서도 지금의 라이프스타일을 결합한 궈차오 향수다. 젊은 세대는 강해진 중국을 드러내는 중국풍 브랜드에 열광한다. 2020년 9월 설립된 예서우칭녠(野獸青年 Young Beast 영 비스트)은 패키지에 ‘중국 제조(메이드 인 차이나)’를 내세웠다. 싼투는 중국인이 특히 좋아하는 음료인 버블티와 중국 돈 런민비 냄새가 나는 제품을 출시했다.

중국 MZ 세대 소비자의 뜨거운 반응에 궈차오 향수 브랜드로 투자금도 몰린다. 리클래서파이드(RE CLASSIFIED)는 지난해 1월 시틱캐피털에서 추가 투자를 유치해 중국 전역 매장 수를 100개 이상으로 늘렸다. 싼투는 지난해 4월 가오랑투자에서 투자를 받았다. 치웨이투수관은 지난해 9월 스페인 향수 회사 푸치(푸이그)로부터 투자금을 유치했다. 관샤는 온라인으로만 제품을 팔다가 최근 오프라인 매장을 여러 개 열며 소비자 접촉 채널을 늘렸다.

중국 관샤(To Summer)의 향수 제품. /관샤

짧은 영상 공유 플랫폼 틱톡·더우인 운영사 바이트댄스도 중국 향수 시장 경쟁에 뛰어들었다. 기술 회사가 향수를 만들어 팔겠다고 나섰다. 바이트댄스는 이모티프(EMOTIF)란 자체 향수 브랜드를 만들었다. 조만간 세 가지 향의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톰포드, 아르마니 등 외국 브랜드 향수를 만든 조향사들이 개발에 참여했다. 2㎖, 9㎖ 소량 제품으로 작은 용량을 선호하는 중국 10~30대 여성 소비자를 겨냥했다. 2㎖ 제품은 19.9위안(약 3700원)으로 가격도 저렴하다.

바이트댄스의 향수 사업 진출은 철저히 소비자 빅데이터 분석에 기반했다는 분석이 있다. 틱톡은 지난해 9월 기준 해외 사용자 10억 명 이상을 확보했다. 틱톡의 중국 버전인 더우인 사용자도 7억 명을 넘어섰다. 바이트댄스는 샤오홍슈 등 중국 이커머스(전자상거래) 플랫폼에서 첫 향수를 판매할 예정이다.

중국 싼투(三兔 Scentooze)가 '중국인의 고체 향수'란 문구를 내세워 홍보한 향수 제품. /싼투

중국 향수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로 평가된다. 향수를 뿌리는 사람이 아직 그다지 많지는 않다는 것이다. 향수 업계에선 중국 인구 14억 명 중 향수 사용자가 1억 명이 채 안 되는 것으로 본다. 스위스 향수 제조사 지보단(Givaudan)은 중국 인구의 5~7%(7000만~9800만 명)만이 향수를 쓰는 것으로 추산했다. 지보단은 2020년 중국에 세 번째 생산 시설을 추가한 데 이어, 2021년 6월엔 알리바바 산하 티몰의 첫 향수 산업 파트너로 낙점됐다. 티몰이 축적한 중국 가입자 10억 명의 데이터를 분석해 소비 트렌드를 빠르게 파악하고 제품 개발 기간을 40주에서 4주로 단축할 수 있다는 게 이 회사 설명이다.

중국 향수 시장 규모는 급성장 중이다. 중국 시장조사 업체 아이리서치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향수 시장 규모는 2017년 61억6000만 위안(약 1조1700억 원)에서 2020년 125억3000만 위안(약 2조3800억 원)으로 두 배로 커졌다. 영국 시장조사 기관 유로모니터는 2022년엔 중국 향수 시장이 400억 위안(약 7조6000억 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했다. 2019년 기준 중국이 전 세계 향수 소비량에서 차지한 비중이 2.5%에 불과하기 때문에 중국이 거대한 성장 잠재력을 가진 시장이란 게 이들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