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 밸리의 정보기술(IT) 산업 인재들이 크립토(Crypto·암호) 기업으로 떠나고 있다. 크립토 시장을 ‘한 세대에 한 번뿐인 기회’로 본 이들이 이직을 결심하고 있다는 것이다. 크립토란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암호화폐, NFT(대체 불가 토큰) 등을 통칭하는 용어다.

애플의 본사가 보이는 실리콘밸리 풍경. /로이터 연합뉴스

20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NYT)는 구글, 메타, 아마존 등의 기술 경영진과 엔지니어들이 크립토 기술 벤처기업으로 떠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NYT는 아마존 클라우드 컴퓨터 부문 부사장이었던 샌디 카터의 이적을 예로 들며 실리콘 밸리의 달라진 기류를 단적으로 나타냈다.

샌디 카터가 링크드인에 언스토퍼블 도메인(Unstoppable domain)으로 이직한다고 발표하며, 이 회사의 지원 링크를 올렸는데 단 이틀 만에 인터넷 대기업 출신의 350여명이 이를 클릭해 지원했다는 것이다. 언스토퍼블 도메인은 블록체인 기반 웹사이트를 판매하는 회사다.

NYT는 이처럼 전통적인 대형 기술 기업들의 인재들이 안정적인 직장을 떠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리콘 밸리 내에 ‘크립토’가 대세로 자리 잡으며, 상당수의 인재들이 이를 기회로 보고 이직을 고려한다는 것이다. 실제 비트코인 가치는 지난해 60% 올랐고, 이더리움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Ether)는 다섯 배 이상 뛰었다.

NYT는 또 실리콘 밸리의 인재들이 크립토 시장이 과거 개인용 컴퓨터와 인터넷 등장에 못지 않은 기회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출시 초반 조롱을 받았지만, 결국 새로운 세대를 만들어낸 것과 역사적 유사점이 있다는 것이다. 수십년에 한 번 오는 변혁기에 뛰어들어 보상을 얻으려는 인재들이 늘고 있다는 해석이다.

전 구글사 임원인 스리드하르 라마스와미는 “1990년대 인터넷의 탄생을 다시 한번 느끼는 것 같다”며 “초창기여서 혼란스럽지만 기회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이에 크립토 시장의 투자자들은 넘치고 있다. 민간 투자를 추적하는 회사인 피치북에 따르면 투자자들은 올해 전 세계 크립토 및 블록체인 벤처기업에 280억 달러(약 33조3788억원)을 쏟아부었다. NFT회사에 투자된 돈은 30억 달러(약 3조5763억원)에 달한다.

물론 이런 변화 흐름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도 있다. ‘튤립 파동;과 같은 과거의 투기 광풍과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시각이다. 튤립 파동이란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발생한 과열 투기 현상으로, 튤립 뿌리 하나가 암스테르담의 저택 한 채 값만큼 폭등하다 급락한 사태를 말한다.

하지만 NYT는 크립토 시장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크립토가 소수의 회사들에 의해, 보다 분산된 인터넷을 만들어가면서 세상을 바꿀 것이라 말한다고 설명했다. 비트코인은 2009년 처음 나왔지만, NFT와 같은 크립토 제품은 올해 등장해 주류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또 일부 크립토 벤처 기업들은 직원들이 회사의 암호화폐를 처분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거대 기술기업 못지않은 임금을 보장한다고 NYT는 말했다. 거대 기업 임금의 3분의 1만 받고 회사를 옮기지 않아도 될 정도로 크립토 벤처기업들의 자금이 풍부하다는 의미다.

이외에도 NYT는 구글과 같은 대기업을 떠나는 이유 중 일부는 회사가 커지면서 관료주의화 된 영향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 택시 중개회사인 리프트의 재무책임자(CFO)는 이달에 사임하고 크립토 벤처기업에 합류했다. 수로지트 차테르지 부사장은 지난해 회사를 떠나 최대 암호화폐 교환회사인 코인베이스의 제품생산책임자(CPO)로 옮겼다.

NYT은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하면서 구글과 같은 회사의 최고 경영진(CEO)들이 직원들이 크립토 벤처기업으로 떠나는 문제를 매주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글은 직원들이 이직을 막기 위해 추가로 스톡옵션을 제공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