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환경·사회·지배구조) 분야의 선도적 기업으로 손 꼽혀온 유니레버가 최근 립톤(Lipton)을 비롯한 차(茶) 사업부문 매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케냐 농장 노동자의 인권 문제가 불거져 난처한 입장이 됐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5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21세기 기업 생존의 핵심이 된 ESG 분야에서 ‘교과서’로 통하는 글로벌 대기업이 윤리적 문제로 난항을 겪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다국적 기업 유니레버 산하 차 브랜드 '립톤'의 홍차 티백으로 우린 차. /유니레버

FT는 이날 유니레버가 독립 사업부인 ‘에카테라’ 매각 추진과 동시에 케냐 폭력사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전했다. 차 브랜드와 차 경작지를 동시에 갖고 있는 유니레버가 자사 소유의 대규모 농업농장 3군데에서서 인권과 임금 공정성 등 윤리적으로 민감한 이슈를 처리하는 것이 쉽지 않을 거란 의미다. 유니레버는 케냐 외에 탄자이나, 르완다에 대규모 차 재배지(플랜테이션)를 운영하고 있다.

세계 최대 차 생산업체이자 다국적 생활용품 기업인 유니레버는 올해 초 립톤과 피지팁스(PG Tips), 브룩본드(Brooke Bond) 브랜드를 보유한 차 사업부문을 분사해 에카테라를 독립 신설했다. 최근 10년 간 차 사업 성장세가 둔화하는 상황을 고려한 전략이었다. 에카테라의 연 매출은 20억유로(약 2조6700억 원)이며 시장가치는 최대 50억 파운드(약 7조9000억 원)로 평가 받는다. 매각을 위한 입찰에는 애드번트와 칼라일, CVC 등 글로벌 대형 사모펀드 운용사들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니레버의 지난해 총 매출은 507억2000만 달러(약 60조 원)에 달한다.

특히 산하 브랜드 중 식음료 부문에서 가장 유명한 립톤은 공유가치로 환경 피해를 줄이고 윤리 경영을 선보여 대중으로부터 호평을 받아왔다. 티백 가격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립톤은 100%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재배된 차만을 구매하겠다고 선언해 화제가 됐다. 하루에 1달러도 받지 못하는 차 농장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토양을 훼손하지 않는 재배 방식을 채택하겠다고도 했다. 가격인상이 불가피했지만 ‘건강한 농지’를 계승하는 윤리적 브랜드라는 인식이 자리 잡으면서 각국에서 시장 점유율이 꾸준히 증가했다.

이랬던 유니레버가 차 분야 매각 추진과 동시에 ESG 논란을 대처하느라 고심하고 있다는 것이다. FT는 유니레버 케냐 지사가 2007년 발생한 폭력사태와 관련해 재검토에 돌입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케리코카운티에 위치한 8900헥타르의 농장에서 인종 갈등으로 촉발된 습격 사태가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케냐인 노동자 다수가 피해를 입었는데 유니레버가 이들에게 적절한 보상 조치를 취하지 않는 등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했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새계 최대 차(茶) 생산업체이자 다국적 생활용품 기업인 유니레버의 로고. /로이터 연합뉴스

농장 노동자 등 피해자들은 유니레버 본사가 위치한 영국 런던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2018년 패소했다. 유니레버가 케냐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해 ‘주의(를 기울일) 의무’가 있다는 것을 원고가 입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이 문제는 케냐 법원에서 다뤄야 한다고 판결했다. 결국 이들 가운데 218명의 피해자는 지난해 유엔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여기에는 폭력 사태로 7명이 숨지고 56명의 여성이 성폭행 피해를 당한 것에 대해 사측이 의학적, 심리적 치료비를 부담하고 보상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들은 특히 농장 공격 사태 이후 6개월 간 임금을 받지 못했고, 이후 농장에 복귀한 노동자에게도 약 한 달치 임금인 80파운드만 지급됐다고 주장했다. 반면 유니레버는 앞서 재정적 보상과 파손된 기물 복구, 병원 치료 및 상담 지원 등 ‘의미 있는 보상’을 했다고 밝혔다.

FT는 “차 브랜드와 차 경작지를 모두 소유하는 통합 비즈니스 모델을 유지해온 유니레버가 3곳의 대규모 농장에서 인권과 임금 등 공정성 이슈를 처리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회사는 케냐 외에 탄자이나와 르완다에도 대규모 차 재배지를 소유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차 생산을 위한 국제원탁회의(Thirs) 회장 사비타 바네르지는 “외딴 지역에 농장을 세우고 타지에서 노동자의 가족들을 데려오는 유니레버의 모델은 영국 식민지 모델을 답습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인수합병(M&A) 업계에선 에카테라의 잠재적 구매자들이 특별히 ESG에 관심이 높은 만큼 경작지 인권과 급여 문제가 매각을 어렵게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니레버는 케리코 농장 등 자사 노동자의 임금이 업계 평균보다 상당히 높다며 반박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부 입찰자는 에카테라 인수가격을 더 낮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윤리적 문제를 물고 늘어질 거란 전망도 나온다고 FT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