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중국의 태양광 산업 제재 문제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바이든표 친환경 에너지 사업’의 핵심인 태양광의 패널 원재료(폴리실리콘) 대부분이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생산되는데, 이 지역 소수 민족에 대한 중국의 강제 노동을 규탄하기 위해 제재를 강화하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 시각) 메릴랜드 볼티모어 센터 스테이지에서 CNN 앵커 앤더슨 쿠퍼와 함께 인프라 투자법안과 관련한 타운홀 미팅에 참석해 물을 마시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은 26일(현지 시각) 백악관 브리핑에서 “미국은 태양광 에너지를 보유하면서도 인권을 지킬 수 있다”며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강제 노동과 인권 탄압이 벌어지는 곳이라면 신장을 포함해 어디든 강력한 입장을 취하는 동시에 탄력적·효과적인 태양광 공급망을 육성하고 개발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이 두 문제 중 하나만 선택하도록 강요 당할 구조적 이유가 없다”고 했다.

백악관의 ‘모호한’ 입장은 영국 일간 더 타임스가 지난 15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내달 열리는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 불참하겠다는 의사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에 전달했다고 보도한 지 10여일 만에 나왔다. 연간 탄소배출 총량 전세계 1위인 중국은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 목표에 동참하는 조건으로 신장 소수민족과 대만·홍콩 문제, 무역 마찰 등에서 미국이 한 발 물러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 中 제재하면 美 친환경 핵심 정책도 차질

미국이 태양광 제재를 두고 고심하는 건 양국 간 공급망이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중국 태양광 업체들은 폴리실리콘 생산 과정에서 효율이 높은 원자재인 고순도 석영(石英·quartz)을 사용하는데, 대부분을 미국에서 수입한다. 이론상 필수 원자재는 아니지만 저비용으로 폴리실리콘을 대량 생산하려면 석영이 반드시 필요하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미국은 다국적 광산업체 유니민과 더쿼츠코프가 소유한 노스캐롤라이나주(州) 광산 등에서 전세계 고순도 석영의 85%를 생산하고 있다.

앞서 미국은 지난 6월 인권 탄압을 이유로 신장 지역의 폴리실리콘 업체 5곳을 상대로 수입·수출 금지 조치를 내렸다. 그러나 미국산 고순도 석영은 여전히 중국에 수출되고 있다고 SCMP는 전했다. 고순도 석영이 필수 원자재가 아니기 때문에 미 정부의 제재망을 피할 수 있었고, 5개 업체 외 다른 중국 업체에 우회 수출하는 방식으로 계속 거래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즉, 중국이 신장 강제 노동을 통해 전세계 태양광용 폴리실리콘의 45%를 생산할 정도로 시장을 지배하고 있지만 미국이 고순도 석영 수출을 제재하면 중국의 생산량도 급감한다. 이럴 경우 미국도 저렴한 중국산 태양광 패널 확보에 문제가 생긴다. 오는 2035년까지 메릴랜드주 크기의 국토를 태양광 패널로 덮겠다는 바이든의 친환경 에너지 구상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중국 업체들은 폴리실리콘 생산 외에도 패널 조립 등 다른 공급망의 80%를 점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신화 연합뉴스

◇”中 협조 없으면 기후 대응 목표 달성 어려워”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해 중국의 협조가 필수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존 케리 미 기후 특사는 최근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 “중국의 태양광 산업에 대한 미국의 기존 규제와 기후변화 우려 간 조화를 이루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중국과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연간 탄소배출 총량이 전세계 1위인 중국이 협력하지 않으면 기후변화 대응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민주당 소속 일부 하원의원들도 바이든 대통령에 서한을 보내 중국과의 협력을 촉구했다.

반면 설리번 보좌관은 지난 6일 중국과 고위급 회담에서 “기후변화 협력을 중국이 미국에 베푸는 호의로 보고 거래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미중 관계 개선책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도 “연내로 예정된 미·중 화상 정상회담이 차선”이라고만 했다. 인권 단체들도 미국이 인권 탄압에 대한 비판 수위를 낮춘다고 중국이 기후 대응에 협조할 거란 믿음은 ‘근시안적’이라며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WP는 미국과 중국의 대립 속에 올해 기후변화 총회는 뚜렷한 성과 없이 끝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이 고강도의 탄소감축 목표를 제시하고 중국에 해외 석탄발전소 지원 철회를 구체화하라고 압박하고 있지만, 중국이 바이든 행정부의 태양광 산업 제재 등을 이유로 내세워 기후총회 불참 등 비협조적 태도를 유지할 거란 전망이다. 설리번 보좌관은 이에 대해 “연말 두 정상이 화상으로 회담할 기회를 갖기로 합의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