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을 앞두고 전세계 주요국에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코로나19 이후 경기회복 움직임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무엇보다 겨울철을 앞두고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이미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서민들의 가계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지난달 29일(현지 시각) 영국 노스위치에 있는 한 주유소 입구에 기름이 떨어졌다는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영국에서는 기름을 실어나르는 트럭 운전기사 부족에 따른 공급난 여파로 최근 주유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유럽은 탄소중립 정책에 따라 화력발전의 원료를 석탄이나 원유에서 천연가스로 대체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 여파로 천연가스 가격이 올해 들어서만 129% 올라 23개 원자재 중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에너지 가격 안정을 위해 힘쓰겠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유럽 천연가스 가격이 6일(현지 시각) 유럽 천연가스 가격이 전일 대비 9.6% 떨어지긴 했지만, 아직 상황이 달라진 건 없다.

주목할 점은 세계 석탄 가격의 기준이 되는 호주 뉴캐슬 발전용 석탄 가격도 최근 t당 200달러를 넘어서며 연초 대비 100% 이상 급등했다는 점이다. 친환경 에너지인 천연가스와 화석연료인 석탄 가격이 동시에 큰 폭으로 오른 것. 환경 규제 로 석탄 채굴에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천연가스 가격 상승이 발전용 석탄 수요를 부추긴 결과로 보인다.

여기에 인구 총합이 27억에 달하는 중국과 인도의 전력난이 겹쳤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이지만 석탄 공급난과 강력한 탄소 배출 억제 정책 때문에 극심한 전력난을 겪으면서 철강, 섬유, 완구 등 다양한 업종이 당국의 전기 공급 제한으로 정상적인 조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인도 언론에 따르면 지난 1일 기준으로 석탄 화력 발전소 135곳 가운데 72곳의 석탄 재고가 사흘 치도 남지 않아 중국과 같은 전력난을 겪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중국의 생산자물가지수(PPI)에도 반영되고 있다. 지난 9월 발표된 중국의 8월 PPI 상승률은 9.5%로,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중국의 생산자물가 상승은 시차를 두고 미국과 유럽 등의 수입물가를 거쳐 소비자물가를 압박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미국의 휘발유 가격도 급상승했다. 뉴욕타임스(NYT)는 4일(현지시간) “미국인들이 1년 전보다 휘발유 1갤런 당 1달러를 더 지출하고 있다”며 “천연가스 가격은 1년간 150% 이상 올랐고 이번 겨울에 식품·화학제품·플라스틱 제품의 가격과 난방비도 상승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날 갤런 당 휘발유 평균 가격은 3.2달러였고, 1년 전에는 2.18달러였다. 휘발유 가격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같은 기간 갤런당 3.2달러에서 4.4달러로 상승했다. 한국보다 휘발유 가격은 상대적으로 저렴하지만 미국에서는 갤런 당 3달러를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본다.

영국은 트럭 운전사 부족 등으로 주유소에서 기름이 부족해지는 주유 대란까지 겪고 있다. 나디아 칼비뇨 스페인 경제디지털혁신부 장관은 “국가적 수준에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EU의 조율된 대응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물가는 큰 폭으로 올랐다. 독일의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4.1%)은 30년 내 최고 수준이다. 유로존의 소비자물가 상승률(3.4%)도 13년 내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미국의 소비자물가 역시 6월부터 5%대 중반에서 고공행진하고 있다.

신흥국의 경우 더욱 심각하다. 터키의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9.58%를 기록했으며 조만간 발표될 브라질과 러시아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각각 10.2%, 7.0%로 예상된다.

이 밖에도 알루미늄(47%)과 구리(20%) 가격이 올랐고 브라질 가뭄은 커피(56%)와 설탕 가격(27%)을 끌어올렸다. 면화(34%) 선물 가격은 10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최근 2014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브렌트유도 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원자재의 가격 상승은 중간재를 거쳐 소비재 가격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로이터는 최근 “원자재 등 원료 가격이 오르면서 반도체 가격 인상이 가시화되고 있다”며 “반도체 가격 인상은 휴대전화부터 자동차까지 연쇄적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제 천연가스 가격 추이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라고 평가했던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내년까지 인플레이션이 이어질 수 있다며 전망을 바꾸고 있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공급망의 병목현상과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공장 가동이 계속 미진할 경우 스태그플레이션이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스태그플레이션은 스태그네이션(Stagnation·경기침체)과 인플레이션의 합성어로 물가는 오르지만 성장이 지체되는 현상을 말한다. 실제로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높아지는 가운데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하락하고 있다. 지난 9월 말 Fed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후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이전 전망보다 0.8%포인트 오른 4.2%로 예측하며,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이전 전망보다 1.1%포인트 내린 5.9%로 조정했다.

모건스탠리 아시아 회장을 지낸 스티븐 로치 예일대 석좌교수는 미국 경제전문매체 CNBC와의 인터뷰에서 “‘공급망 병목현상(공급망 차질로 제품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태)’이 세계 곳곳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으며 이는 우리가 1970년대 목격한 스태그플레이션을 연상시킨다”고 걱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