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로 국내 증시가 문을 닫았던 지난 20일 ‘헝다 쇼크’가 전세계 주식과 가상화폐 시장을 강타했다. 중국을 대표하는 부동산 개발업체인 헝다그룹이 1조9500억위안(약 357조원)의 천문학적인 채무를 견디지 못해 파산 위기에 몰리면서, 금융 위기와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자산 가격이 급락한 것이다.

17일 중국의 대형 부동산개발회사 헝다 그룹이 장쑤성 쉬저우에서 추진하는 문화관광도시(文化旅遊城) 건설 현장을 하늘에서 바라본 모습. 헝다 그룹이 파산 위기에 놓이면서 현장 공사는 중단된 상태다. /AP 연합뉴스

21일 미국과 유럽 증시는 혼조세를 보이거나 반등하며 전날의 충격을 다소 회복했다. 그러나 여전히 헝다그룹이 무너지고 ‘중국판 리먼브라더스 사태’와 같은 금융 위기가 발생할 것이라는 두려움은 좀처럼 걷히지 않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공동부유’를 중요한 정책 과제로 내세우며 빈부 격차의 상징과 같았던 부동산 시장을 압박해 온 시진핑 국가주석이 극심한 경제적 충격을 무릅쓰고 결국 헝다그룹의 파산을 묵인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 20일 美 다우지수, 한 때 3% 가까이 급락… 충격 줄었지만, 여진(餘震) 지속

20일(현지시각) 뉴욕증권거래소(NYMEX)에서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1.78% 하락한 3만3970.47로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1.70% 내린 4357.73을, 나스닥지수는 2.19% 떨어진 1만4713.90을 각각 기록했다.

파산 위기에 몰린 중국의 대형 부동산 회사 헝다 그룹의 광둥성 선전 본사 주변에 15일 투자자들이 모여 있다. /AP 연합뉴스

다우지수는 장 중 한 때 2.81%까지 하락했다. 나스닥지수는 3.42%까지 떨어진 뒤 장 막판이 돼서야 가까스로 낙폭을 줄였다.

다우지수는 마감가를 기준으로 지난 7월 19일 이후 최대 하락률을 기록했다. S&P500지수와 나스닥지수 역시 각각 지난 5월 12일 이후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다른 글로벌 주요 증시 역시 헝다그룹 파산 위기의 충격을 피해갈 수 없었다. 20일 홍콩 항셍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3.30% 떨어진 채 거래를 마감했다. 일본 닛케이지수 역시 같은 날 2.17% 하락했다. 독일 DAX 30지수와 프랑스 CAC 40지수 역시 각각 2.31%, 1.74% 떨어졌다.

가상화폐 시장의 충격은 더 컸다. 한국 시각으로 지난 21일 오전 9시 기준 비트코인 가격은 24시간 전보다 9.77% 하락한 4만2533달러에 거래됐다. 이더리움 가격도 같은 시각 10% 가까운 하락률을 기록하며 3000달러 선까지 내려왔다.

다만, 21일에는 글로벌 주요 증시는 반등하거나 혼조세로 마감했다. 다우존스와 0.15%, S&P500지수는 0.08% 각각 하락하는 데 그쳤고, 나스닥지수는 0.22% 올랐다. 영국과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주요 증시는 1% 넘게 상승 마감했다. 항셍지수 역시 0.51% 오르며 반등했다.

그러나 헝다그룹 위기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안감은 계속 이어지는 분위기였다. 뉴욕 증시의 경우 다우존스는 21일 장 초반 강세를 보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보합 흐름을 보이다 결국 소폭 하락했다. 나스닥지수 역시 장 막판 매도세가 이어지면서 상승 폭이 크게 줄었다.

◇ 헝다, 中 ‘부동산 붐’ 속에 고속 성장·문어발 확장… 창업자는 마윈과 친분

중국 선전에 기반을 두고 있는 헝다그룹은 라이벌 완커그룹과 함께 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회사 중 한 곳으로 꼽힌다. 만약 헝다그룹이 파산할 경우 비슷한 처지에 있는 부동산 개발업체들 역시 위기를 피해가기 어려워진다.

중국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설사들의 채무불이행이 잇따라 발생하면 금융 위기로 이어질 수 밖에 없고 당연히 경기가 극심한 침체에 빠지게 된다. 중국 주식과 채권 시장 등에 투자한 외국 금융사들 역시 막대한 손실을 볼 가능성이 크다. 헝다그룹의 위기에 전세계 자산 시장이 공포에 짓눌린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중국 정부가 이 같은 충격을 감수하고 헝다그룹의 파산을 결국 묵인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는 점이다.

블룸버그는 21일 신용평가사 S&P의 보고서를 인용, 중국 정부가 과도한 부채를 안고 있는 자국 기업들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내려는 목적에서 헝다그룹에 대해 직접적 지원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S&P는 이로 인해 헝다그룹이 결국 디폴트(채무불이행)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파산 위기에 몰린 중국의 대형 민영 부동산 기업 헝다 그룹의 쉬자인 회장이 지난 6월 5일 허베이성 우한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할 당시의 모습. /연합뉴스

지난 1997년 설립된 헝다그룹은 주로 차입에 의존해 고속 성장을 거듭해 온 기업이다. 2000년대 이후 중국의 부동산 개발 붐을 타고 거대 재벌의 반열에 들어섰고, 창업자인 쉬자인 회장은 2010년대 중반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을 제치고 중국 1위 갑부에 오르기도 했다.

헝다그룹은 부동산을 시작으로 관광과 스포츠, 전기자동차 분야 등으로 영역을 넓히며 ‘문어발 확장’을 해 왔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중국의 프로축구팀 광저우 에버그란데가 헝다그룹이 소유한 구단이다.

그러나 헝다그룹의 이 같은 차입 경영은 시진핑 주석이 지향하는 정책과 맞지 않아 정부와 규제 당국의 표적이 됐다. 시 주석은 최근 공동부유를 강조하며 소수가 부(富)를 독점하는 성장 중심 정책보다 분배를 앞세우는 정책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집값 상승세를 잡기 위해서도 부동산 업체들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쉬자인 헝다그룹 회장은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와도 그 동안 두터운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마윈은 지난 2014년 쉬 회장의 권유로 12억위안을 투자해 헝다그룹 계열 축구팀 광저우 에버그란데의 지분을 매입하기도 했다.

마윈 창업자는 수 차례 중국 정부의 정보기술(IT) 기업 규제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인 바 있다. 이로 인해 정부에 ‘미운 털’이 박혔고 올 들어 알리바바는 사상 최대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받는 등 정부의 압박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쉬자인 회장과 마윈의 친분이 중국 정부가 헝다그룹의 파산을 방치하는 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 ‘중국판 리먼 사태’ 현실화 되나… 글로벌 IB는 “영향 제한적”

투자자들의 우려가 크지만, 금융 시장에서는 헝다그룹의 파산이 과거 2008년 미국 리먼브라더스 도산 사태 때와 같은 극심한 위기로 번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는 곳이 많다.

14일 파산 위기에 몰린 중국의 대형 민영 부동산 기업 헝다 그룹이 허난성 주마뎬에서 진행하고 있는 아파트 건설 현장 앞으로 스쿠터를 탄 여성이 지나가고 있다. /AFP 연합뉴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2일 금융 시장 전문가들의 전망을 인용해 “헝다그룹의 디폴트가 중국 경제를 전반적으로 위협하는 더 큰 문제를 촉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헝다의 파산을 예상한 S&P 역시 같은 보고서에서 “개별 기업의 위기는 중국 정부가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투자은행(IB) 바클레이즈도 보고서에서 “중국 은행권의 자산은 45조달러에 이르고 부채는 30조달러 규모”라며“350억달러 정도의 은행 대출을 포함한 헝다그룹의 채무는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헝다그룹의 재무 상황은 중국 부동산 분야 전체를 대변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시티그룹 역시 보고서를 통해 헝다그룹의 위기가 중국에 리먼브라더스 사태와 같은 충격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며, 중국 금융 당국이 시스템 위기로 이어지지 않도록 관리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