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5일(현지 시각) 영국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 회의를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른바 ‘인플레이션 시한폭탄'이 글로벌 경제의 최대 위험요소로 부상했다. 전 세계적인 원자재 수급 불균형으로 상품 값이 급등하고 식량가격지수가 1년새 40% 넘게 뛴 상황에서다. 일각에선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등 각국 중앙은행의 긴축 대응이 늦어져 세계 경제에 후폭풍이 몰려올 거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미 연준은 오는 2023년까지는 현행 제로(0)금지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나타나는 인플레이션을 일시적인 현상으로 판단해 물가상승률이 2%를 넘더라도 이를 용인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연준 목표치인 2%를 크게 상회하고 있다. 지난 4월 CPI는 전년 대비 4.2% 올라 13년 만에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오는 10일 발표되는 5월 CPI는 더 큰 폭으로 상승할 것으로 시장은 예상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는 건 미국뿐이 아니다. 특히 유럽 중앙은행들은 신중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여전히 높은 실업률이 물가 상승을 억제한다는 분석까지 나올 정도다. 고용시장이 강력하게 회복되지 않는 한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르진 않을 거란 의미다. 유럽중앙은행(ECB)의 필립 레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 경제전문매체 CNBC에 “유럽 국가들의 높은 실업률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계약기간 1년 이상 상용노동자의 올해 1분기 월평균 임금 총액은 381만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2% 늘었다. 분기 기준으로는 2018년 3분기(4.9%) 이후 최대 증가율이다.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으로 원자재 수요가 증가한 반면 기상이변과 코로나19 등으로 공급이 줄어들자 제품 값이 오르고, 실질구매력에 타격을 입은 노동자의 임금 상승폭이 커진 결과다. 여기에 정부가 2차 추가경정예산으로 돈 풀기에 나서 인플레이션 압력을 더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WSJ은 최근 ‘상품 값 급등이 인플레이션 공포를 더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각종 원자재 가격이 오르고 물가 상승이 ‘일시적 현상'에 머물지 않을 거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상품 값이 이토록 무섭게 상승한 건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라고 했다. 실제 목재와 철광석, 구리 가격은 역대 최고 수준으로 올랐고 옥수수와 대두, 밀 가격은 8년만에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유가도 2년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이런 가운데 독일 최대 투자은행(IB) 도이체방크는 6일(현지 시각) 발간한 보고서에서 “세계 경제가 조만간 터질 인플레이션 시한 폭탄을 깔고 앉아있다”며 각국 중앙은행의 대응이 너무 늦어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도이체방크는 “연준의 정책 우선순위가 사회적 목표로 전환돼 인플레이션을 인내하고 있는 점은 존경할만하다”면서도 “인플레이션을 무시해 전세계 경제를 폭탄 위에 앉도록 만든 책임이 연준에 있다”고 했다.

외신은 이날 해당 보고서의 내용을 집중 조명하며 인플레이션이 세계 금융시장의 최대 리스크로 떠올랐다고 평가했다. WSJ은 “연준 등 각국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압력에 대해 단지 일시적인 현상이라며 무시할 것인지, 금리 인상과 같은 과열을 막기 위한 조치를 앞당길 것인지 이제는 선택해야 할 때가 왔다”고 했다.

연준도 이러한 우려를 주목하고 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이날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금리가 약간 올라가면 미국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대유행 이후 연준이 제로 금리를 장기간 유지해온 상황에서 재무당국 수장이 시장의 금리 인상을 용인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은 것이다. 이와 관련해 CNBC는 “연준이 시장을 대상으로 테이퍼링(자산매입 프로그램 축소)에 대비하도록 하는 작업의 초기 단계에 있다”며 금번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