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석유메이저 엑손모빌이 탈화석연료 가속화를 주장하는 행동주의 펀드에 이사 자리 2개를 빼앗겼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6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이에 따라 엑손의 재생가능에너지 사업 전환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대런 우즈 엑손모빌 CEO.

WSJ에 따르면 엑손모빌은 이날 주주총회에서 예비 개표결과 주주들이 헤지펀드 엔진넘버원(Engine No. 1)이 지명한 이사 후보 2명을 이사로 선출했다. 엔진넘버원은 엑손모빌 지분을 극히 소규모로 보유하고 있지만 기후위기에 대응해 엑손의 변화를 재촉해야 한다고 주주들을 설득해 이사 자리 2석을 확보했다고 WSJ는 전했다.

이는 엑손 주주들이 경영진의 기후위기 대응 전략을 불신한다는 의미다. 미흡한 기후위기 대응이 엑손의 중장기적인 실적에도 타격을 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는 뜻도 된다.

대런 우즈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이사 7명은 유임됐다. 여기에 대해서는 기존 경영진이 새 이사들의 의견을 반영해 기후위기 대응 속도를 높일 것을 주주들이 주문한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이날 주총 결과는 수개월에 걸친 물밑 싸움 끝에 나온 것이다.비록 우즈 CEO가 유임되기는 했지만 그는 이번 주총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개인적으로 엔진넘버원에 반대하라고 주주들을 설득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러나 엑손모빌이 지난해 사상최대 규모인 220억 달러 적자를 내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이전부터 이미 순익창출에 고전한 터라 우즈의 설득이 주주들에게 통하지 않았다.

이날 주총 표결도 과열양상을 빚으면서 우여곡절을 겪었다. 엑손은 투표 마감을 1시간 늦췄고, 엔진넘버원은 이 시간 동안 엑손 경영진이 주주들에게 마음을 돌리라고 종용하고 다녔다고 비난했다.

엔진넘버원은 엑손 경영진에 앞으로 수십년에 걸쳐 화석연료 수요 감소에 대비해 투자를 점진적으로 다변화해야 한다고 촉구했지만 엑손모빌은 앞으로도 수년 동안은 화석연료와 플라스틱 수요가 탄탄할 것이라면서 석유시추 확장 전략을 고집해 왔다. 엔진넘버원은 비록 엑손 지분율이 0.02%에 불과하지만 수년간 지속된 엑손의 실적 악화와 기후 위기 속 화석연료 생산업체의 미래에 대한 투자자들의 두려움을 잘 이용해 주총에서 승리를 이끌어냈다.

기업 컨설팅 업체 클래리오의 피터 브라이언트 파트너는 엑손모빌이 지난 수년간 화석연료 사업에서 좋은 실적을 내지 못한데다 재생가능에너지에 투자를 하지 않아 지속가능성에 집중하는 투자자들로부터도 외면받았다면서 주총에서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였다고 지적했다. 엔전넘버원의 승리에는 엑손 최대 주주 가운데 하나인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도 일익을 담당했다. 블랙록은 엔진넘버원이 추천한 이사 4명 가운데 3명을 지지했다.

엔진넘버원은 엑손이 자사 자체의 탄소배출과 엑손이 생산하는 석유제품이 유발하는 탄소배출을 포함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뤄야 한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한편 이날 네덜란드 법원은 영국-네덜란드 합작 석유메이저 로열더치셸에 2030년까지 탄소배출을 45% 줄이라고 판결했다.기후위기 우려 속에 미국과 유럽 양대 석유메이저에 대한 기후위기 대응 강화 압박이 심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