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별세한 조석래 효성(004800)그룹 명예회장은 고(故) 조홍제 창업주에 이어 효성그룹의 2세대 총수직을 35년간 수행했다.
조 명예회장은 1935년 경남 함안군에서 태어났다. 일본 와세다대를 거쳐 미국 일리노이 공과대학원에서 화학공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 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준비하던 중 56세의 나이에 홀로 동양나이론을 창업한 선친(조홍제 창업주)의 부름을 받고 1966년부터 회사 경영에 동참했다.
이후 나일론 원사사업을 세계 4위까지 키웠고 1973년에 동양폴리에스터를 설립하면서 효성을 명실상부한 화학섬유 업계의 리더로 이끌었다.
◇ 스판덱스 개발 등 효성의 기술 경영 이끌어
조 명예회장은 1983년에 ‘제2의 창업’을 선언하면서 효성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대대적으로 손질했다. 이 선언 이후 효성 그룹은 화섬, 중전기, 화학, 건설, 정보통신 등의 사업에 집중해왔다.
그의 ‘선택과 집중’ 전략은 1997년 한국 기업이 위기를 겪었던 외환위기(IMF) 때 빛을 발했다. 당시 섬유, 화학, 중공업, 정보통신, 무역 등을 제외한 비주력 사업은 기존 사업과 통합하거나 매각했다.
그룹 재무구조를 건실하게 만든 뒤 그는 글로벌로 무대를 옮겼다. 중국, 베트남 등에 스판덱스 생산 공장을 세웠다. 베트남 공장은 세계 최대 공급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어 2008년 터키, 2011년 브라질에 공장을 완공하면서 아시아를 비롯해, 유럽·중동·북아프리카부터 중남미 시장까지 전 세계 시장을 겨냥한 생산 네트워크를 확보하게 됐다.
조 명예회장은 젊은 시절엔 기업인보다 대학 교수를 하고 싶어 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창업주도 그와 비슷하게 학구적인 성향으로 교수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조 명예회장은 학구적이며 논리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유행에 편승하거나 의욕을 앞세우기보다 윤리적이고 원칙적인 경영 스타일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 명예회장은 “아무도 안 할 때 (그 사업 영역에) 들어가라”, “오직 기술로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지론을 펼쳤다. 이는 사양산업으로 치부됐던 스판덱스 사업에서도 고수익을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효성은 타이어 보강재의 일종인 타이어코드로 세계 시장의 45%를 점유하고 있다. 2003년 중국에 생산 공장을 준공하면서 본격적으로 세계에 진출했고 미셸린과 굿이어 등 글로벌 타이어 기업과 장기 공급계약을 체결해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유창한 어학능력... 민간 외교관으로 활동
조 명예회장은 재계의 민간 외교관으로도 불렸다. 그는 일본과 미국에서 유학했고 30년 이상 태평양경제협의회, 한일경제협회, 한미재계회의, 한중재계회의 등 다양한 국제경제교류단체장을 맡았다.
특히 2000년에는 한·미 재계회의를 통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필요성을 처음으로 공식 제기했다. 체결 이후에도 미국 의회를 방문해 인준을 설득했다.
조 명예회장은 국내 대표 경제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현 한국경제인협회)에서 1987년부터 2007년까지 부회장을 지냈고 2007년부터 2011년까지는 회장을 맡아 국내 재계의 얼굴 역할을 했다.
2017년 발간된 조 명예회장의 팔순 기념 기고문집에는 재계의 지인들이 기억하는 그의 일면이 드러났다. 손길승 SK텔레콤(017670) 명예회장은 정부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밝히는 조 명예회장을 ‘재계 지도자’라 했고, 허창수 GS(078930)그룹 회장은 ‘미스터 글로벌’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