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기간 굳게 잠겼던 하늘길이 빠르게 열리면서 그간 항공유 생산을 줄였던 정유사들도 다시 항공유 생산을 늘리고 있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탄소 배출이 적은 지속가능 항공유(SAF·Sustainable Aviation Fuel)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데, 국내 정유사들은 아직 관련 설비를 갖추지 못한 상태라 미래 항공 연료 생산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27일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국내 정유사의 항공기용 제트유 수출액은 104억달러(약 12조8000억원)를 기록해 전년 동기 44억달러(약 5조4000억원)보다 136% 늘었다. 같은 기간 수출 물량도 2021년(1~11월) 5936만배럴(Bbl)에서 2022년(1~11월) 8007만배럴로 35% 증가했다.

그래픽=손민균

S-Oil(010950)(에쓰오일)은 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 항공유 판매로만 3조7477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계 항공시장이 얼어붙은 2020년 1~3분기(1조1326억원), 2021년 1~3분기(1조4549억원)와 비교해 각각 230%, 157% 증가한 것이다. 같은 기간 전체 매출에서 항공유가 차지하는 비중도 11.8%를 기록하며 2020년(7.5%), 2021년(9%)보다 늘어났다.

SK이노베이션(096770)의 자회사인 SK인천석유화학도 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 1조910억원의 매출을 항공유 부문에서 기록하며 2020년, 2021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항공유 매출이 각각 165%, 221% 늘었다. 여기에 아직 발표되지 않은 4분기 실적을 합산하면 매출 증가폭은 더 커질 것으로 예측된다.

대한항공 여객기./대한항공 제공

정유사의 항공유 매출이 급증한 것은 하늘길이 열리면서 항공유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삼정KPMG경제연구원이 발간한 ‘2023년 국내 주요 산업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항공 여객은 2019년 수요 대비 94%를 회복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도 올해 여객 수요가 2019년 대비 85.5% 수준을 회복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최근 글로벌 항공업계가 탄소 감축을 이유로 지속가능 항공유(SAF) 비중 확대를 검토하고 있어 국내 정유사들도 흐름에 맞춰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SAF는 곡물이나 식물, 해조류, 동물성 지방 등 바이오 대체 연료를 사용해 생산한 항공유로 최대 80%까지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기존 항공유보다 가격이 3배가량 비싸고 생산·급유 인프라가 부족해 아직 상용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IATA는 2050년까지 SAF를 활용해 ‘넷제로(Net Zero·탄소 순 배출량이 0인 상태)’를 이루겠다고 선언했다. 유럽연합(EU)도 2025년부터 EU 내에서 이륙하는 모든 비행기에 SAF의 혼합사용을 의무화한다는 방침을 세웠고, 혼합 비율도 2025년 2%에서 2050년 63%까지 점차 확대할 전망이다. 올해부터 발효된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도 자국 내에서 생산·사용된 SAF에 대해 갤런(약 3.79리터)당 1.25~1.75달러의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 전경./조선DB

SAF 시장이 새롭게 열리고 있지만, 아직 국내 정유사들은 SAF 생산 설비 기반이 구축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정유사들은 신규 공장 설립 등을 통해 SAF 시장에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현대오일뱅크는 내년까지 기름 찌꺼기, 폐식용유, 땅에 떨어진 팜 열매 등 비식용 자원을 원료로 활용한 바이오항공유·바이오디젤 등 제품을 연간 50만톤(t)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대산공장 내 1만㎡ 부지에 공장을 신설하고, 기존 정유 설비도 바이오 사업을 위한 설비로 전환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오는 2030년까지 연간 100만톤에 달하는 화이트 바이오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SK이노베이션도 지난 10월 울산에서 열린 60주년 간담회에서 “2027년까지 울산콤플렉스(CLX)에 친환경 항공유 생산을 위한 공정을 신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SK이노베이션은 SAF 생산 공장 건설을 위한 부지를 검토하고 있으며, 오는 2027년부터 본격적인 SAF 생산을 준비하고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지속가능 항공유가 당장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시장 규모가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며 “정유사들도 관련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고민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