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미국 앨라배마주 치안을 담당하는 보안관(셰리프·sheriff)이 보디캠(몸에 부착하는 카메라)을 목에 걸고 테스트하는 모습이 현지 폭스뉴스, USA투데이 등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전·후방에 4개의 광각 카메라를 탑재하고, 이를 합성하는 소프트웨어 기술을 통해 360도 전방위 시야를 제공하기 때문에 보안관들이 보다 안전하게 움직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나왔다.

이 제품은 삼성전자(005930)에서 스핀오프(분사) 해 2016년 설립된 국내 스타트업 ‘링크플로우’가 만든 보디캠 ‘넥스(NEXX)360′이다. 링크플로우는 현지에서 우호적인 평가를 받고 50대 납품을 완료했다.

미국 앨라배마주 보안관이 링크플로우의 보디캠을 착용한 모습. /링크플로우
링크플로우의 바디캠을 착용한 채 배달 중인 모습. 전·후방 360도 영상이 기록된다. /링크플로우

링크플로우 보디캠은 보안·치안에 관심이 많은 일본에서도 인기가 좋다. 김용국 링크플로우 대표는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일본 사람에는 블랙박스 용도로 많이 팔리고 있으며, 현금 수송을 담당하는 현지 최대 보안경비 업체 알속(ALSOK)과도 제품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며 “전체 매출의 40%가 일본에서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 시장을 두드리는 K-스타트업이 잇따르고 있다. 국내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 현황을 종합 집계한 통계는 없지만, 코트라(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가 2021년 12월 한 달간 전 세계 해외무역관을 통해 설문을 돌린 결과 29개국에 한국 스타트업이 최소 198개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이 76개사로 가장 많았고, 중국(37개), 인도네시아(10개), 일본(9개) 등이 그 뒤를 이었다.

그래픽=이은현
그래픽=이은현

아이템은 무형(無形)의 서비스가 전체의 63%로 가장 많았다. 제품·서비스가 결합한 링크플로우 같은 사례도 전체의 21%를 차지했다. 스타트업 해외 진출 방식이 주로 제품을 거래하는 제조업과 달리 한국의 서비스 수출에 기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스타트업은 소비자(기업)에 직접 서비스·제품을 수출하거나 현지 법인, 오픈마켓 등을 거쳐 해외로 나가고 있다.

박필재 한국무역협회 스타트업해외진출실 실장은 “그간 국내 서비스 산업은 규모가 작고 기술적인 어려움으로 해외 진출이 어려웠으나 요즘은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투자 유치나 클라우드 서비스 등을 통해 이런 걸림돌을 극복하고 있다”며 “(스타트업이) 한국의 서비스 수출에 기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국의 국제 수지 가운데 서비스 수지는 2019년 마이너스 268억4500만달러(약 34조5000억원)에서 지난해 마이너스 31억800만달러(약 4조원)로 적자 규모가 줄고 있다.

핀란드 엘리사와 테스트한 시선추적 기술. 동공 움직임에 따라 전자책이 스크롤된다. / 장우정 기자

시선추적 기술을 모바일에서 세계 최초로 상용화해 전자책 서비스 ‘밀리의 서재’에 납품한 스타트업 ‘비주얼캠프’는 영국 통신사 보다폰, 핀란드 노키아폰 총판 엘리사 등 유럽 주요 기업과 최근 6개월간 기술·사업화 검증을 진행했다. 손 대신 동공이 마우스 역할을 해 눈 움직임에 따라 스크롤 하거나 페이지를 넘기는 식의 비주얼캠프 핵심 기술에 대한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보다폰의 경우 ‘배고파’ ‘화장실 가고 싶어’ ‘졸려’처럼 자주 표현하는 문구 서른 가지를 띄워 놓고 치매환자가 이를 쳐다만 봐도 보호자에게 알리는 식의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박재승 비주얼캠프 대표는 “유사 기술을 보유한 다른 기업은 시선 추적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캘리브레이션(보정·사격 시 영점 조절과 비슷) 포인트가 5개 이상 필요하지만, 비주얼캠프는 1개 점으로 1초 만에 보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이자 자선재단 빌앤드멀린다 게이츠 재단을 이끌고 있는 빌 게이츠를 사로잡은 국내 스타트업도 있다. ‘파이퀀트’라는 회사는 물질에 빛을 쏴서 성분을 분석하는 장비인 분광기를 소형화하는 기술을 갖추고 있다. 실험실 단위로 쓰이는 대형 분광기의 성능을 신뢰도 98%로 유지하면서도 가격은 100분의 1로 낮춰 기술력을 높게 평가받고 있다.

소형 분광기(워터스캐너)에 깨끗한 물을 넣었을 때와 오염된 물을 넣었을 때 달라지는 결괏값. /파이퀀트

이 기술로 물이 오염됐는지를 측정하는 장비가 ‘워터스캐너’다. 깨끗한 물을 넣었을 때와 오염된 물을 넣었을 때 미세하게 결과가 달라지는 것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파이퀀트는 한국 최초로 빌앤드멀린다 게이츠 재단과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피도연 파이퀀트 대표는 “오염된 물을 빠르게, 개발도상국이 감당할 수 있는 가격으로 분석할 수 있어야 (성분 분석하는 동안) 오염된 물을 계속 마시는 악순환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파이퀀트는 이런 분광기 기술로 고객의 피부 상태를 측정해 이에 맞는 화장품을 추천하는 ‘스킨 스캐너’도 개발했다. 로레알 등 글로벌 유력 화장품 회사와 손잡고 사업화를 검증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스킨 스캐너를 활용해 기존에 없던 신사업 개척을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스타트업이 해외로 나갈 땐 제조업과 달리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서비스를 팔아야 하기 때문에 현지 기술·사업화 검증이 필수 과제가 되고 있다. 박필재 무협 실장은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늘리려면 역설적으로 많은 해외 기업의 국내 진출이 활발해져야 기회가 만들어진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