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대전광역시에 위치한 쎄트렉아이 문지연구소 내부 클린룸에 쎄트렉아이가 개발 중인 해상도 0.3m급 중형 인공위성 스페이스아이-티(SpaceEye-T)의 부품들이 나열돼 있다./정재훤 기자

지난 9일 대전광역시에 위치한 쎄트렉아이(099320) 문지연구소. 방진복을 갖춰 입고 클린룸에 들어가자 테스트 중이던 인공위성 스페이스아이-티(SpaceEye-T)의 카메라 베젤, 콜리메이터(광학장치), 미러(반사경) 등 각종 부품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스페이스아이-티는 쎄트렉아이가 한화(000880)그룹의 우주 사업 협의체인 ‘스페이스 허브’와 협력해 개발 중인 30㎝급 초고해상도 상용 지구 관측 위성이다. 700㎏의 무게를 가진 중형 위성으로, 2024년 발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인공위성의 해상도가 30㎝라는 것은 우주에서 봤을 때 지상에 있는 가로·세로 30㎝ 면적을 하나의 화소(픽셀)로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크기의 화면이라면 화소가 많을수록 선명하게 보이는 것처럼, 인공위성의 해상도도 숫자가 낮을수록 더 뚜렷한 화질을 제공한다.

쎄트렉아이 관계자는 “30㎝급은 우주 상공에서 도로에 있는 차량의 종류나 도로 위 일부 글씨까지 식별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세계 최고 해상도를 가진 상용 위성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30㎝급 해상도는 미국, 프랑스, 이스라엘 등 일부 위성 강국만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개발에 성공하면 세계에서 4~5번째로 초고해상도 지구관측 위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인공위성은 보통 최종 제품이 나오기 전에 2회 정도 시제품을 만든다. 제작과 해체를 반복하며 각 부품의 크기를 수 ㎜ 단계까지 미세 조정해 최적의 규격을 찾기 위해서다. 이날 본 스페이스아이-티 역시 1차 시제품을 완성한 뒤 다시 해체해 2차 시제품을 개발하는 단계였다. 쎄트렉아이 관계자는 “만들어진 시제품은 지구 궤도 위에서 번갈아 찾아오는 극한의 추위와 태양열을 모두 견딜 수 있는지 평가해 최종 비행모델 제작을 위한 데이터를 쌓는 데 활용된다”고 말했다.

쎄트렉아이가 개발 중인 해상도 30cm급 상용 인공위성 스페이스아이-티(SpaceEye-T) 1차 시제품 모습./쎄트렉아이 제공

쎄트렉아이는 한국 최초 인공위성인 ‘우리별 1호’를 개발한 핵심 연구인력들이 모여 1999년 스타트업 형태로 설립한 회사다. 매년 20% 이상의 성장을 이뤄왔고, 지난 2008년에는 코스닥 시장에도 상장했다. 창립 초기 20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인력은 400명까지 늘어났다.

쎄트렉아이는 위성 완제품을 여러 번 수출했을 만큼 내실을 갖추고 있다. 지난 2009년 말레이시아와 아랍에미리트(UAE)에 해상도 2.5m급 광학 위성 RazakSAT, DubaiSat-1을 각각 수출했고, 2014년에는 스페인에 해상도 0.75m급 광학위성 Deimos-2를 수출했다. 이 밖에 위성 영상 수신 처리 시스템, 위성 관제 시스템 등 소프트웨어도 자체 개발해 납품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는 지난해 1월 쎄트렉아이의 지분 30%(약 1000억원)를 전격 인수했다. 우주 개발이 민간 주도로 넘어가는 ‘뉴 스페이스’(New Space) 시대에서 쎄트렉아이가 가진 인공위성 관련 기술을 십분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쎄트렉아이의 저궤도 지구관측위성(왼쪽)과 스페이스 허브 팀장을 맡고 있는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회장./쎄트렉아이, 한화 제공

한화그룹은 쎄트렉아이 인수 이후 지난해 3월 한화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시스템(272210), 쎄트렉아이가 참여한 우주 사업 총괄 컨트롤타워 ‘스페이스 허브’를 출범했다. 한화그룹은 발사체부터 위성까지 이어지는 우주 사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키울 계획이다. 쎄트렉아이와 한화시스템이 위성체 및 지상체 제작을 맡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 방산 부문이 발사체, 발사대, 고체연료 부스터 등을 제작하며 우주 사업 수직 계열화를 이루겠다는 목표다.

지분 투자 후 김동관 한화솔루션(009830) 부회장은 쎄트렉아이 기타비상무이사에 이름을 올렸다. 쎄트렉아이 관계자는 “김동관 부회장이 올해 8월 말 승진한 뒤 쎄트렉아이 이사 직함은 내려놓았지만, 임원 재직 당시엔 쎄트렉아이 회의가 열릴 때마다 화상으로 참여해 의견을 나누며 경영 실무를 직접 챙겼다”고 말했다. 지금은 손재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사장이 김동관 대표이사의 뒤를 이어 쎄트렉아이의 비상무이사로 등재돼 있다.

이날 쎄트렉아이 전민연구소에서는 스페이스아이-티와 더불어 개발 중인 100㎏급 초소형 위성인 스페이스아이-엠(SpaceEye-M)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스페이스아이-엠의 해상도는 80㎝급으로 스페이스아이-티보다는 낮지만, 소형 위성이기 때문에 여러 대를 군집 운용하며 더 풍부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쎄트렉아이 관계자는 “스페이스아이-티는 한 번 궤도에 올리면 같은 지역을 스캔하는 데 2.5일 정도 걸린다. 선명도는 높지만, 내가 원하는 날의 데이터를 정확하게 추출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를 대비해 스페이스아이-엠도 궤도에 여러 대 올려 위성에서 나오는 결과물을 종합하면 확실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광역시에 위치한 쎄트렉아이 전민연구소 내 클린룸에서 연구원들이 인공위성을 제작하고 있다./정재훤 기자

쎄트렉아이는 사업을 확장해 현재 2개의 자회사를 가지고 있다. 2014년 SIIS(SI Imaging Services)를 설립하면서 정부에서 개발해 운영 중인 아리랑 인공위성의 영상 판매권을 획득해 다양한 종류의 위성영상을 해외 160여개 국가에 판매하고 있다.

2018년에는 SIA(SI Analytics)를 신설하고 인공지능(AI)을 활용, 인공위성 영상을 분석해 제공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기존에는 지형이나 건물 등의 변화를 사람이 직접 눈으로 파악해야 했다면, SIA는 인공지능이 변화 탐지 등의 작업을 대신하고 분석 보고서까지 자동으로 생성하는 모델을 개발했다. 현재 국내외 군사 및 정보기관 등을 대상으로 데이터 분석 솔루션, AI를 활용한 분석 플랫폼 등을 제공하고 있다.

우주 산업은 인류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블루오션으로 꼽힌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글로벌 우주 산업 규모는 민간기업의 주도적인 움직임 하에 2018년 3500억달러(약 450조원)에서 연평균 5.3%씩 성장, 2040년 1조1000억달러(약 1430조원)로 커질 전망이다. 민간 주도 우주 여행 사업을 추진하는 미국의 스페이스X, 블루 오리진 등 뉴스페이스 시대를 열기 위한 세계적인 움직임도 이미 활발하다.

한국의 경우 지난 6월 21일 한국형 우주 발사체 ‘누리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되면서 세계 7번째로 1t급 이상의 실용 위성을 스스로 발사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게 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1일 항공우주연구원과 누리호 체계종합기업 계약을 체결하며 누리호 고도화사업 발사체 제작 총괄 주관사가 됐다. 누리호에 탑재된 엔진 6개를 모두 조립하고 납품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내년부터 2027년까지 누리호 3기를 추가 제작하고 4회 추가 발사할 예정이다.

윤선희 쎄트렉아이 사업개발부문 부장은 “쎄트렉아이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위성 체계개발 3대 핵심 기술인 위성 본체, 전자광학 탑재체, 지상 수신국 관련 기술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며 “다가오는 뉴스페이스 시대에서 쎄트렉아이의 인공위성 기술과 한화의 방산 인프라가 합쳐진다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