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034730)그룹 회장이 각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주가 관리를 강하게 주문하고 나섰다. SK그룹은 최 회장의 지시에 따라 다음 달 열리는 ‘CEO 세미나’에서 계열사별로 주가 관리·부양방법을 제시할 것을 요구했고, 이를 내년 CEO 인사평가에 적극 반영할 계획이다. 그간 최 회장은 매년 주가 관리를 강조해왔지만 올해는 그 주문 강도가 더욱 강해졌다는 것이 SK그룹 내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최 회장이 주가 관리에 만전을 기하라고 주문하는 것은 올해 들어 주요 계열사들의 주가 상황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20개 계열사는 올 들어 평균 30% 넘게 주가가 하락해 삼성, 현대차(005380), LG(003550) 등 주요 경쟁 그룹에 비해 낙폭이 컸다. 일부 계열사 중에는 올해 들어서만 70%가 넘게 주가가 하락한 곳도 있다.

최 회장은 과거에도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에도 못 미치는 곳이 있다”며 강한 어조로 계열사 경영진들을 압박해왔다. PBR은 주가를 주당순자산으로 나눈 비율을 말하며 PBR이 1 아래라는 것은 주가가 재무제표상의 순자산가치에도 못미친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다음 달 세미나를 앞두고 일부 계열사에서는 금융투자회사를 찾아 주가 관리를 위한 전략을 고심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서울 광진구 그랜드 워커힐 서울에서 열린 ‘2022년 SK 확대경영회의’에서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다. / 뉴스1·SK그룹 제공

29일 재계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주요 SK그룹 계열사 중 한곳은 A증권사를 찾아 주가 부양책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 SK그룹은 10월 19일부터 21일까지 올해 운영 성과를 점검하고 내년 사업 계획을 수립하는 ‘CEO 세미나’를 여는데, 이 세미나에서 주가 관리 방안을 최 회장에게 보고해야 하기 때문에 자문을 구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 회장이 실적을 비롯한 모든 성과는 주가에 반영되는 만큼 내년부터 CEO 평가에서 주가 관리 비중을 크게 높일 것이라고 했다”며 “계열사들은 (이번 CEO 세미나에서 제시한 주가부양) 모델이 미흡하거나 내년에도 주가가 오르지 않으면 CEO가 바뀔 수도 있다고 보고 있어 사활을 걸고 주가 관리 방안을 찾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올해 들어 주가 관리에 대해 강조하는 그룹 내 분위기가 있다”며 예년보다 주가에 대한 더 강한 압박이 있다고 전했다.

SK그룹이 계열사 CEO 평가에 주가를 반영한 것은 지난 2017년부터다. 지난 2016년 최 회장이 “현재의 경영환경 아래서 변화하지 않는 기업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서든데스(Sudden Death·급사)’를 맞을 수 있다”며 “대부분 관계사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한 데 따른 것이다.

올해 들어 SK그룹의 주가는 큰 폭으로 하락했다. SK그룹 20개 계열사의 주가는 올 들어 지난 28일까지 평균 33.32% 하락했다. 지주사인 ㈜SK는 22.7% 하락했다.

SK그룹의 이차전지 주력 계열사인 SK아이이테크놀로지(361610)(-65.8%)와 바이오 계열사인 SK바이오사이언스(302440)(-61.4%)의 주가는 60% 넘게 빠졌다. SKC(011790)(-49.3%), SK스퀘어(402340)(-45.3%)도 40% 넘게 주가가 하락했다. SK바이오팜(326030)(-41.4%)과 SK하이닉스(000660)(-38%) 등도 40% 가량씩 주가가 내렸다. 그룹의 디지털 광고를 담당하는 인크로스(216050)의 경우 76.7% 주가가 급락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출렁이며 다른 그룹사 주가도 하락했지만, SK그룹 계열사의 주가 하락폭은 삼성(-15.84%·16개 계열사 평균)이나 현대차그룹(-20.09%·12개사), LG그룹(-27.47%·에너지솔루션 제외 10개사) 등 다른 그룹사보다 큰 편이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는 27.1%(808.36포인트) 하락했다.

그래픽=이은현

PBR을 기준으로 주요 계열사들을 보면 20개 계열사 중 11개 계열사가 PBR 1을 밑돌고 있다. SK스퀘어(0.3배), SK네트웍스(001740)(0.39배), SK가스(018670)(0.43배), SK(034730)(0.49배) 등이 특히 낮았다. PBR이 1을 넘은 계열사 9곳 중에도 SK바이오팜(12.15배), SK바이오사이언스(4.03배), 나노엔텍(039860)(2.33배) 등 세 곳을 제외하면 모두 1이 겨우 넘는 수준이다.

최 회장이 주가 관리를 더욱 강도높게 주문하는 것은 각 계열사가 추진해온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과 파이낸셜 스토리(Financial Story)의 성과가 지금쯤이면 나타날 시점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파이낸셜 스토리란 기업의 매출·영업이익 등 재무 성과를 넘어 매력적인 목표와 구체적 실행 계획이 담긴 기업의 비전을 뜻한다. SK그룹은 작년을 파이낸셜 스토리 원년으로 삼고 실행력을 높여왔다.

SK그룹 관계자는 “파이낸셜 스토리란 기업이 단순히 얼마를 벌었다는 것이 아니라 사업을 ESG적으로 잘 변경해 경제적 가치까지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며 “최 회장은 파이낸셜 스토리를 통해 기업 가치를 제고하고 주주 관리까지 이어져야 한다, 결과적으로 (파이낸셜 스토리의 성과는) 주가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최 회장이 주가 관리를 보다 강하게 주문하면서 CEO 평가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된다. 주요 계열사의 경우 2017년에 취임한 장동현 SK㈜ 부회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 박정호 SK스퀘어·텔레콤·하이닉스 부회장 등이 각 회사를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