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하반기부터 유럽·중국의 전력 대란이 반복되고 있다. 제련소·제철소 조업에 차질을 빚으면서 원자재 가격이 급등락하는 일도 잇따르고 있다. 에너지와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산업계에 부담이 될 수 있어, 수입선 다변화 등 중장기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1일 비철금속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원자재업체 글렌코어(Glencore)는 올해 상반기 유럽에서 35만900톤(t)의 아연을 생산했다. 지난해 상반기보다 12%(4만7500t) 감소했다. 글렌코어는 지난해 11월부터 이탈리아 포르토베스메(Portovesme) 제련소 운영을 중단한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글렌코어의 유럽 내 아연 사업 세전이익(EBIT)은 올해 상반기 1900만달러를 기록해 전년 동기보다 72.5%(5000만달러·660억원) 줄었다.

니르스타(Nyrstar)의 네덜란드 부델(Budel) 아연 제련소. /니르스타 제공

아연 제련업체 니르스타(Nyrstar)도 다음달 1일부터 네덜란드 부델(Budel) 제련소를 “별도 공지가 있을 때”까지 멈추기로 했다. 부델 제련소는 연간 31만t의 아연을 생산할 수 있다. 유럽 최대 규모다. 니르스타는 벨기에·프랑스 아연 제련소 2곳도 감산을 유지하기로 했다.

유럽 제련업체가 아연을 감산하는 이유는 전기요금이 폭등한 여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액화천연가스(LNG) 등 주요 에너지원의 가격이 오르면서 독일과 프랑스 등의 전력 도매가격은 1년 새 5배 뛰었다. 유럽 지역 아연 제조원가에서 전기요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50% 수준에서 80% 이상으로 늘어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아연 가격이 현물 기준 지난달 15일 t당 2921달러에서 이달 18일 3574달러로 22.4% 올랐으나, 여전히 수익성이 떨어지는 상황이다. 겨울에 전기요금이 더 오를 것이란 전망에 따라 조업 재개 시점도 불투명하다.

중국도 전력난을 겪고 있다. 폭염으로 전기가 부족해지면서 쓰촨(四川)성에 이어 충칭(重慶)시도 오는 24일까지 산업용 전력 사용을 제한하기로 했다. 중국은 지난해 하반기 석탄 부족으로 전력 대란을 겪은 뒤 올해 석탄 생산량을 10%가량 늘렸으나, 전기 공급 문제가 계속 불거지고 있다. 이에 중국 철강업체들의 전기로 가동률은 지난 4월 70%대를 회복했다가 6월 이후 50% 안팎에 머물고 있다. 지난달 중국의 조강(쇳물) 생산량은 8143만t으로 최근 3년 중 최저치였다.

주요 글로벌 업체들의 잇단 감산으로 고려아연(010130)과 포스코, 현대제철(004020) 등 국내 업체들이 수혜를 볼 수 있다는 전망도 있지만, 업계에선 경기 위축에 대한 우려가 더 컸다. 철강사 관계자는 “에너지 가격이 치솟는 만큼 경기가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며 “공급량이 떨어져도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익을 기대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에너지 위기가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운 만큼 정부 차원의 중장기 전략이 필요하다는 게 중론이다. 우리나라의 2020년 기준 1차 에너지 수요(공급)량은 2억9208만 석유환산톤(toe)인데, 수입 비중이 92.8%(2억7097만 toe)에 달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앞서 글로벌 에너지 공급 위기 장기화에 따른 중기 대응전략으로 ▲원가주의 확립 ▲에너지원별 수입원·계약방식 다변화 ▲글로벌 녹색광물 공급망 확보 ▲원자력 발전 활용도 조기 제고 등을 제언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원가에 맞춰 단계적으로 에너지 요금을 올리는 한편, 장기적 공급 계획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