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기록적인 폭염으로 독일 라인강의 수위가 30㎝선까지 낮아지면서 주변 화학업체들의 원료 생산·운반에 비상이 걸렸다. 지금과 같은 저수위 상황이 지속될 경우 이들 업체는 생산량을 줄일 수밖에 없다. 이는 전 세계 화학 제품값을 끌어올려 국내 화학업체의 반사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19일(현지시각) 독일연방수문학연구소(BFG)에 따르면, 라인강 중상류 수상 운송의 길목인 독일 남서부 카웁에서 측정한 수위는 이날 오전 9시 30분 기준 32㎝까지 낮아졌다. 지난달 22일(81㎝)과 비교하면 절반도 채 되지 않는 수준이다. 연구소는 경제적 측면에서 수운이 작동할 수 있는 마지노선으로 40㎝를 제시했다. 라인강 수운은 이미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셈이다.

18일(현지시각) 독일 쾰른에서 바라본 라인강 전경. 가뭄으로 강 바닥이 드러나고 있다./EPA연합뉴스

라인강은 알프스 산맥에서 발원해 스위스, 프랑스, 독일을 거쳐 네덜란드까지 흐르며 서유럽 내륙 운송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한다. 1300㎞에 달하는 이 강은 글로벌 화학업계의 핵심 물류 통로로 꼽힌다. 유럽 나프타분해설비(NCC)의 3분의 1이 라인강을 이용해 원료를 조달하고 제품을 운송하며, 일부 화학제품은 글로벌 생산능력의 20% 이상이 라인강 지역에 밀집돼 있다. 세계 최대 화학 기업인 바스프를 비롯해 이네오스, 코베스트로 등 글로벌 대형 화학 기업들이 라인강 근처에 생산시설을 두고 있다.

라인강 수위가 낮아지면서 화학업체들의 물류 운송에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수위가 떨어지면 화물선은 좌초를 방지하기 위해 하중을 낮춰 항해해야 한다”며 “최근 일부 화주들은 약 4분의 1의 화물만 선박에 적재하고 있다”고 전했다. 라인강을 통한 운송 비용은 현재 정상 비용의 3배까지 상승한 것으로 전해졌다. 바스프는 현재까지는 설비를 정상가동하고 있다면서도 “향후 수주간 각 공장의 생산량 감소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는 국내 화학업계엔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2018년에도 라인강 수위가 25㎝까지 내려가 수상 운송이 중단됐는데, 당시 국내 화학업계는 수혜를 입었다. 김평중 한국석유화학협회 본부장은 “2018년 유럽에서 생산된 물량이 라인강을 통해 바깥으로 나오지 못해 전 세계 화학제품 수급에 차질이 생겼고, 이에 제품값이 폭등해 국내 업체들이 수출할 때 이익을 봤다”고 말했다. 우레탄 중간재인 톨루엔디이소시아네이트(TDI)의 가격은 당시 2주 만에 15% 가까이 상승하기도 했다.

라인강 저수위로 영향을 받는 화학 제품은 휴켐스와 한화솔루션(009830)이 생산하는 TDI 외에도 애경케미칼(161000)의 가소제, 송원산업(004430)의 산화방지제, 금호석유(011780)의 페놀 등이 있다. 2018년 바스프는 우레탄 중간재인 톨루엔디이소시아네이트(TDI)와 가소제, 산화방지제의 공급 중단을 뜻하는 ‘불가항력 선언’을 선언했고, 이네오스도 페놀과 아세톤에 대해 같은 결정을 내렸다. 코베스트로는 이소시아네이트(MDI) 설비 가동률을 낮췄다.

파이낸셜타임즈(FT)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2018년 가뭄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2018년의 경우 10월 중순부터 약 7주간 배송이 차질을 빚었는데, 이번엔 한여름에 시작됐기 때문에 훨씬 더 오래 (물류 차질이) 지속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이번 라인강 저수위 사태가 국내 화학업계에 큰 반사이익을 주지는 못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2018년을 계기로 글로벌 화학사들의 대응 능력이 강화됐고 화학 업황이 좋지 않아 국내 화학업계의 이익이 제한적일 것이란 분석이다.

바스프 그룹 이사회의 마틴 브루더뮐러 의장은 최근 2분기 실적 발표에서 “훨씬 더 낮은 라인강 수위에서 항해할 수 있는 바지선을 임대했고, 배가 아닌 (철도 등) 다른 물류로 이동할 수 있다”며 “2018년보다 훨씬 더 준비돼 있다”고 말했다. 전유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유럽 내 석유제품 운송비가 연초 대비 6배 상승했는데, 화학제품 운송비도 크게 다르지 않아 물동량 감소가 불가피하다”면서도 “다만 전방 수요가 약해 제품 가격 급등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