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용지와 인쇄용지 등 종이 수요가 줄고 정부와 기업이 ‘페이퍼리스(종이 없는)’ 경영을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제지업계가 친환경 신소재 분야에서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문자 기록이라는 전통적인 종이의 역할을 넘어 플라스틱을 대체하는 친환경 원료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목표다.

11일 한국제지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신문용지와 인쇄용지의 생산량은 최근 감소 폭을 키워가고 있다. 신문용지 생산량은 5년 만에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고 인쇄용지도 같은 기간 10% 이상 줄었다. 이에 제지업계는 친환경 신소재를 차세대 먹거리로 낙점해 연구개발(R&D)과 투자를 이어오고 있다.

그래픽=손민균

한솔제지(213500)는 이달 포장재 전문 스타트업 ‘리우’의 시리즈A 투자에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했다. 리우는 B2B(기업 간 거래) 포장 중개 서비스를 제공하고 포장 자재를 판매하는 기업이다. 한솔제지는 지난 4월엔 식품포장용기 제조기업 성우엔비테크를 250억원에 인수했다. 앞서 출시한 종이 포장재 ‘프로테고(Protego)’와 종이 포장용기 ‘테라바스(Terravas)’ 등 친환경 소재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프로테고는 종이 표면에 자체 개발한 코팅 기술을 적용해 산소와 수분, 냄새를 차단하는 식품·의약품·화장품 포장재다. 기존에 쓰이던 플라스틱, 알루미늄 소재를 대체할 용도로 개발됐다. 종이류 분리배출이 가능하다. 마스크팩 등 화장품은 물론 쉐이크, 스낵, 펫푸드 등 식품과 각종 생활용품 포장에 적용되고 있다.

테라바스는 플라스틱 계열인 폴리에틸렌(PE) 코팅 대신 한솔이 개발한 수용성 코팅액을 적용한 종이 용기다. 분리배출이 가능해 재활용이 용이하고 내수성과 내열성이 뛰어나 식품 용기뿐만 아니라 컵, 빨대 등으로 활용 가능하다. 국내 카페 프랜차이즈에 종이컵과 빨대를 공급 중이다.

한솔제지가 개발한 친환경 포장재 프로테고. 특수 종이에 코팅막을 형성해 산소, 수분, 냄새 차단력을 높였다. /한솔 제공

무림도 하반기에 친환경 포장용기 제품군 출시를 앞두고 있다. 국내 유일 펄프업체인 무림P&P(009580)는 국내산 천연펄프를 이용한 펄프몰드 양산에 나섰다. 일회용으로 사용한 뒤 버리면 자연분해는 물론 퇴비화도 가능하다. 지난 5월 국내 최초로 국제 인증을 획득했다.

무림페이퍼(009200)는 비닐 에어캡을 대체할 고강도 종이 완충재를 선보여 올해 초 포장 기술 관련 세계 최고 권위상인 ‘월드스타 패키징 어워드(World Packaging Awards)’를 수상했다. 수상작인 ‘네오포레’ 완충재는 쿠션 형태의 종이에 공기를 주입해 완충 작용을 하도록 했는데 손바닥만 한 크기지만 10킬로그램(kg)까지 견딜 수 있다.

화장지, 기저귀 등 일회용 생활용품 판매를 주된 매출원으로 하고 있는 유한킴벌리는 제품 원료를 생분해 가능한 소재로 바꿔나가고 있다. 펄프를 원료로 해 45일 만에 100% 생분해가 가능한 친환경 물티슈를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출시 중이다. 일반적인 물티슈는 플라스틱 원료인 폴리에스터로 만들어져 재활용이나 생분해가 안 되는 소각 쓰레기다. 이 밖에 사탕수수에서 유래한 바이오매스 소재를 적용한 기저귀와 생분해 생리대 등도 내놨다.

종이로 플라스틱을 대체하는 것을 넘어 새 원료 개발에도 한창이다. 무림은 이달 ‘나노코리아 2022′에서 나무를 원료로 한 신소재 ‘나노셀룰로스’를 활용한 제품들을 선보였다. 나노셀룰로스는 나무의 주 성분인 셀룰로스를 10억분의 1로 쪼갠 물질이다. 펄프 생산 과정에서 추출되는데 무게는 가볍지만 내구성은 철보다 5배 이상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로 식품, 화장품 포장재와 자동차 내장재 등에 쓰인다. 다만 대규모 양산을 위해선 추가 개발이 필요하다.

업계는 국내 기업 간의 경쟁보다는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제지연합회 관계자는 “나노셀룰로스 산업은 일본이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데, 일본 정부가 일찍이 나노셀룰로스를 미래 소재로 지정하고 기업과 협력해 산업화를 이끌었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국내는 소재 개발에 대한 정부 지원이 목재섬유보다는 바이오 플라스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제지기업들이 플라스틱 대체재로서의 종이 소재 개발에 뛰어들고 있는 시점에서 국내 기업들이 국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각개전투가 아니라 정부 주도의 소재 산업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