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조선업계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자율운항선 기술이 고도화하면 ‘최초’를 두고 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아직 자율운항선 관련 표준이 완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표준으로 자리 잡으면 시장을 선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1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미국 IBM은 영국선급(LR)으로부터 자율운항선 메이플라워(Mayflower)호의 제어 기술과 전력분배 시스템 등에 대한 기본설계 인증(AIP)을 받았다. 메이플라워호는 지난 5일 자율운항해 영국에서 미국까지 대서양을 40일 만에 횡단했다. IBM은 “메이플라워호 인공지능(AI) 선장은 인간의 개입 없이 해양법을 준수하면서 실시간으로 결정을 내려 대서양을 횡단했다”며 “최초의 자기 주도형 자율운항 선박”이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그룹 자율운항 전문회사 아비커스의 '하이나스 2.0'이 적용된 SK해운의 LNG 운반선 '프리즘 커리지'호. /HD현대 제공

현대중공업그룹(HD현대(267250))의 자율운항 전문자회사 아비커스도 미국선급협회(ABS)로부터 태평양 자율운항 결과 증명서를 받는 절차를 밟고 있다. 아비커스가 개발한 ‘하이나스 2.0′이 탑재된 SK해운의 ‘프리즘 커리지(Prism Courage)’호는 지난 2일 태평양을 횡단했다. 미국 남부 멕시코만 연안의 프리포트(Freeport)에서 출발해 충남 보령 액화천연가스(LNG) 터미널까지 33일 만에 도착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세계 최초로 대형 선박의 자율운항 대양횡단에 성공했다”며 “자율운항 결과 증명서를 받는 대로 상용화에 착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그룹과 IBM 모두 처음으로 자율운항선이 대양을 건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각자 ‘최초’를 주장하는 근거가 있다. IBM은 완전 자율운항으로 대양을 횡단한 첫 사례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자율운항을 크게 4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1단계는 선원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수준, 2단계는 선원이 승선한 상태에서 원격제어하는 수준, 3단계는 선원 없이 원격 제어하는 수준, 4단계는 선박의 운영체제가 스스로 결정·운항하는 수준이다. 1~3단계를 부분 자율운항, 4단계를 완전 자율운항으로 분류한다.

IBM의 메이플라워호는 4단계였다. 메이플라워호는 AI가 카메라 6대와 30여개 센서 등에서 수집한 환경 정보를 토대로, 속도·방향 등을 직접 운항했다. 해양생물 등을 마주하면 회피 운항했다. 현대중공업그룹 아비커스의 하이나스 2.0은 2단계였다. 총 운항거리 2만㎞ 가운데 절반은 선원이 조종했다.

자율운항에 성공한 선박의 규모 면에선 현대중공업그룹이 단연 앞선다. 아비커스의 하이나스 2.0이 적용된 프리즘 커리지호는 18만㎥급 초대형 LNG운반선으로 길이 299m, 총톤수(GT) 12만여톤(t)이다. IBM의 메이플라워는 소형 실증선으로 길이 15m, 무게 5t 수준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소형선의 완전 자율운항과 대형선의 부분 자율운항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뛰어난 기술인지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며 “자율운항 선박 기술 경쟁이 새로운 단계에 진입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IBM의 완전 자율운항선 '메이플라워'호. /IBM 제공

현대중공업그룹은 2025년까지 대형 상선의 부분 자율운항을 상용화하고, 2030년 완전 자율운항 도입을 목표로 잡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역시 2025년까지 부분 자율운항을 목표로 지난해부터 자율운항 시험선 ‘단비(DAN-V)’를 띄우고 기술 실증에 돌입했다. 삼성중공업(010140)도 자체개발한 원격 자율운항시스템인 ‘SAS(Samsung Autonomous Ship)’를 연내 상용화하는 것을 목표로 잡고 있다.

정부 산하 자율운항선박기술개발사업 통합사업단에 따르면 자율운항선 시장은 2025년 1550억달러(약 200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자율운항선을 통해 연료비를 줄이고 정비·고장을 최소화하면 선박 운영비를 최대 22%까지 절감할 수 있는 만큼 대부분의 선박에 적용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자율운항선은 아직 ‘표준’이 정해지지 않았다. IMO는 2025년까지 자율운항선박의 용어 등을 정립하고, 2028년에 관련 규약을 마련할 계획이다. 기술을 빨리 상용화하는 쪽이 표준이 될 가능성이 크고, 수주도 유리해지는 구조다.

LNG선 화물창이 대표 사례다. 프랑스 GTT의 특허 기술이 표준으로 자리 잡으면서, 다른 기술은 트랙 레코드(Track Record)를 쌓지 못해 시장에 진입하기 어려워졌다. 해운사 관계자는 “대형 선박에 선적한 화물의 가치가 조(兆) 단위가 넘는 경우도 있어, 자율운항의 제1 목표는 안정성”이라며 “표준으로 인정받는 기술을 선호하고 적용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