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력 56년의 종합제지기업 깨끗한나라(004540)가 7년째 오너 3세 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회사 경영을 이끌고 있는 최현수 사장의 막냇동생 정규씨가 수년 전 최대주주로 올라선 데 이어, 최근엔 본격적으로 경영수업을 시작하면서 향후 3세 경영의 판도가 바뀔 가능성이 점쳐진다.

29일 제지업계에 따르면 깨끗한나라는 고(故) 최화식 창업주가 1966년 만든 회사다. ‘대한팔프’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창업주 작고 후엔 아들 최병민(70) 회장이 기업을 물려받았다. 최 회장은 LG가(家) 구미정씨의 부군이다. 구미정씨는 구자경 전 LG그룹 명예회장의 차녀이자 구광모 LG(003550)그룹 회장의 고모다. 최 회장과 구미정씨는 슬하에 현수(43)·윤수(40)·정규(31)씨를 뒀다.

장녀 현수씨는 2006년에 깨끗한나라에 입사해 마케팅팀, 기획실을 거쳐 2015년 이사로 승진하면서 이사회에 합류했다. 2019년에 부사장, 2020년엔 사장으로 승진해 회사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김민환 부사장과 각자대표 체제를 이어가고 있다. 최 사장은 제지사업부와 생활용품사업부를, 김 부사장은 공장과 인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래픽=손민균

◇ ‘최대주주’ 막내, 경영수업 시작… 승계 지각변동 예고

깨끗한나라의 경영권은 장녀인 최 사장이 갖고 있지만 기업 소유권은 막내인 정규씨에게 쏠려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따르면, 깨끗한나라의 주식 지분은 40%가 특수관계인인데, 정규씨가 16.12%로 최대주주이고 현수·윤수씨가 각각 7.7%로 2대 주주로 올라있다. 장녀와 차녀의 지분을 합쳐도 막내인 정규씨보다 지분이 적다. 3남매에 이어 구미정씨 4.96%, 최병민 회장 3.46% 순이다.

3남매의 지분 배분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깨끗한나라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부채비율이 1500%에 육박할 정도로 재무상황이 악화했고, 최병민 회장은 처가에 도움을 요청했다. 구미정씨의 오빠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이 지분 70.75%를 넘겨 받았고, 이후 회사가 정상화되어 최 회장 일가는 2014년에 다시 지분을 사들였다. 이 과정에서 정규씨에게 지분이 몰리면서 당시 대학생이던 정규씨는 단숨에 깨끗한나라의 최대주주가 되었다. 이는 장남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는 LG가의 전통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엔 정규씨의 경영수업도 시작됐다. 정규씨는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다 몇 년 전 한국에 돌아와, 지난 2020년 3월 기타비상무이사로 이사회에 입성했다. 올해 3월엔 사내 등기임원으로 신규 선임돼 경영에 손을 뻗게 됐다. 깨끗한나라에 따르면 정규씨는 현재 최고재무책임자(CFO) 아래 조직에서 근무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비상무이사였기 때문에 회사 업무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정규씨가 경영수업을 마치는 대로 깨끗한나라의 경영권이 현수씨에게서 정규씨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실적 부진·가족회사 내부거래 의혹은 숙제

정규씨가 이제 막 회사 경영에 발을 들였고 나이도 30대 초반으로 어린 만큼 경영권을 이어받으려면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 기간에 산적한 숙제들을 어떻게 해결할지가 관건이다.

그래픽=손민균

깨끗한나라는 2017년 릴리안 생리대 파동 이후 줄곧 매출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5년(2017~2021년)간 매출액은 연결 기준 6599억원→6263억원→5942억원→5787억원이다. 영업이익은 200억원대 적자를 내다 현수씨가 부사장으로 취임한 2019년에 흑자 전환해 51억원의 이익을 냈다.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마스크 판매량이 급증해 2020년도 영업이익이 1년 만에 10배로 치솟았지만, 이듬해인 2021년엔 다시 130억원으로 급감했다. 깨끗한나라에게는 호재로 작용했던 코로나19마저 끝을 보여가는 상황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가족회사 내부거래 의혹도 해결해야 한다. 깨끗한나라는 주식회사 보노아와 케이앤이 이외에 특수관계회사로 온프로젝트 등을 두고 있다. 온프로젝트는 차녀 윤수씨가 대표로 있는 광고대행사다. 2015년 8월에 설립됐고 주로 깨끗한나라의 광고 업무를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깨끗한나라는 온프로젝트에 매년 수수료 명분으로 20억원 안팎의 금액을 지급하고 있다. 7년 동안 총 127억2349만원의 수수료가 온프로젝트에 지급됐다. 각각 ▲2015년 20억2389만원 ▲2016년 20억2829만원 ▲2017년 21억9357만원 ▲2018년 18억9292억원 ▲2019년 18억7267만원 ▲2020년 13억6916만원 ▲2021년 13억2199만원이다. 이와 관련해 깨끗한나라는 “온프로젝트에 디자인 시안 작업 등 용역을 해준 대가로 지급한 금액”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깨끗한나라는 가족회사 나라손, 용인시스템의 내부 거래 의혹으로 홍역을 치렀다. 두 회사 모두 윤수씨가 경영을 맡았었다. 특히 나라손은 1993년에 설립된 화장지 제조기업인데, 그간 100억~300억원의 연간 매출 가운데 95% 이상을 깨끗한나라에서 냈다.

인력 파견 업체인 용인시스템도 깨끗한나라로부터 매년 100억원 이상의 수수료를 챙겼다. 특히 지난 2017년, 2018년에는 깨끗한나라가 용인시스템에 지급한 연간 수수료만 323억원, 335억원에 달했다. 깨끗한나라는 대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내부거래 규제 대상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깨끗한나라는 현재 이 두 회사에 대해선 경영에 관여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깨끗한나라 관계자는 “나라손과 용인시스템은 지난해 말 청산해 지금은 특수관계사에서 제외돼 있다”며 “현재 내부거래 관련 사안은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