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그룹이 10일까지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리는 포시도니아 조선해양 박람회에서 부유식 액화천연가스(LNG) 저장·재기화 설비(FSRU) 개조 솔루션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 8월 개발을 마친 신기술을 적용해 노후 LNG 운반선을 해상 LNG터미널인 FSRU로 개조하는 방식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유럽이 카타르 등 다른 천연가스 생산국으로부터 LNG 수입을 늘릴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수입 터미널 역할을 하는 FSRU 시장의 확대를 노린 포석이다.

LNG-FSRU는 떠다니는 LNG 터미널이다. 해상에서 LNG 운반선으로부터 LNG를 받아 저장하고, 필요하면 다시 기화시켜 육상 수요처에 공급하는 설비다. 육상 LNG 공급기지에 비해 공사 기간이 짧고 건조비용은 저렴해 지금까지는 남미와 동남아, 아프리카 등 중소 규모 가스 수입국을 중심으로 수요가 있었다.

현대중공업그룹이 지난 6일부터 오는 10일까지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리는 '포시도니아(Posidonia) 2022'에 참가한다고 7일 밝혔다. 사진은 '포시도니아 2022' 현대중공업그룹 전시관 모습. / 현대중공업그룹 제공

10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현재 새로 만드는 FSRU 시장은 한국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010140) 등 한국 업체가 석권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전 세계에 존재하는 FSRU 35척 가운데 33척이 한국산이다. 2010년대 초중반부터 시장을 포착하고 적극적으로 제품 개발 및 영업 활동에 나선 결과다.

최근엔 개조 FSRU가 주목받고 있다. 제작 단가와 기간에 있어서 신조 FSRU에 비해 경쟁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개조 FSRU 가격은 척당 1억~1억5000만달러 수준으로, 신조 FSRU 척당 가격의 33~50% 수준이다. 공사기간도 1년 안팎이라 신조 FSRU(3년), 육상 터미널(5년 이상)에 비해 짧다. 낡고 사양이 낮은 초기 LNG선은 전세계적으로 250~400척이 있어 재료도 풍부하다. 선주 입장에서는 단순 폐선보다 높은 중고선가를 확보할 수 있는 재활용 방법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연간 10~20척 수준으로 예상되는 FSRU 수요가 대부분 개조 FSRU로 몰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게다가 신조 FSRU 시장을 주도해온 한국 조선사들은 연이은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랠리로 건조 시설이 가득 찬 상태다.

현재 개조 FSRU 시장은 인건비가 낮은 싱가포르, 중국 등의 업체들이 주도하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이런 상황을 내다보고 승부수를 띄웠다. HD현대(267250)의 비상장 자회사 현대글로벌서비스와 현대E&T가 공동으로 지난해 8월 개조 FSRU를 위한 핵심 설비인 중소형 LNG 재기화 모듈의 개발을 마쳤다. 한국선급(KR)의 기본인증(AIP)도 획득했다.

모듈 방식으로 제작 단가를 낮춰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현대글로벌서비스는 잠재 고객들에게 FSRU 개조 비용으로 척당 약 6000만~1억달러를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중화권 업체 최저가의 60% 수준이다.

정기선 HD현대 사장/현대중공업그룹 제공

이 같은 계획이 실현되면 현대중공업그룹 산하 조선소의 독(dock)을 오랜 시간 할애해 새로 짓지 않으면서도, FSRU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효과가 나게 된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연초부터 신규사업의 맨 앞 자리에 LNG-FSRU를 놓았다. 이번 포시도니아 박람회에도 정기선 사장을 필두로 가삼현 한국조선해양 부회장 등 그룹 조선해양 분야 핵심 경영진이 총출동해 영업에 나섰다. 포시도니아는 세계 3대 조선해양 박람회로 유럽의 초대형 선주 등 글로벌 조선해양 업계의 비즈니스 미팅의 장이다.

신설 법인인 현대글로벌서비스를 키워 그룹의 가치를 높이는 효과도 있다. 현대글로벌서비스는 지난 2016년 현대중공업의 선박·해양 관련 서비스 및 선박제어사업 부문 등을 독립시킨 회사다. 정기선 사장이 주도해 만들어졌고, 직접 대표를 맡은 계열사이기도 하다. 지난해에는 미국 사모펀드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로부터 상장 전 대규모 지분 투자(프리IPO)로 지분 38%를 6500억원에 넘겨 주목받기도 했다.

현대글로벌서비스는 ‘힘센’ 엔진의 부품 및 기타 조선 기자재, 전장 부품 등의 상품 중심으로 지난해 1조877억원의 매출(연결기준)을 올렸다. 3월말 현재 선박 개조 사업의 수주 잔고는 1200억원 수준이다. 이번 포시도니아의 수주전이 성공할 경우, 선박 개조 매출이 기존 상품 매출을 뛰어넘을 가능성도 있다. 현대글로벌서비스는 현재 글로벌 선사 10여곳과 노후 LNG선의 FSRU 개조 상담을 진행 중이며, 금년 중 엔지니어링·구매·설치·시운전을 총괄하는 턴키 형태의 계약을 처음 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