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제조업 중 하나로 70년 이상의 업력을 이어오고 있는 페인트업계가 원자재 가격 상승, 물류대란 등 대외 리스크로 실적 위협을 받고 있는 가운데 신사업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들 업체의 신사업은 ‘오너 3세’가 이끌고 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주요 페인트 기업의 2021년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모두 감소했다. 전년도 대비 노루페인트(090350)는 21% 줄었고, 삼화페인트(000390)는 95%가량 급감했다. 조광페인트(004910)강남제비스코(000860)는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1분기는 일부 기업이 실적 개선을 이뤄냈지만 국제유가 불안정으로 페인트 업계 전망이 여전히 불투명해 새 성장동력을 키워내야 하는 상황이다.

3세 경영이 본격화한 페인트업계는 각종 신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노루페인트 지주사 노루그룹 창업주 고(故) 한정대 회장의 손자 한원석 대표는 바이오 계열 자회사인 ‘더기반’을 이끌고 있다. 저성장기에 들어선 도료산업과 달리 바이오산업은 성장 가능성과 부가가치가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여기에 노루그룹이 주력으로 삼아온 정밀화학이 이 산업에서도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봤다.

그래픽=이은현

더기반은 농산물 가공, 유통과 더불어 종자를 개발, 생산하고 있다. ‘알찬꿀’(참외), ‘핑크스타’(토마토) 등이 대표 상품이다. 정부 국책사업인 ‘골든시드프로젝트(GSP)’에도 참여해 배추, 토마토, 양배추, 고추, 수박의 수출용 종자를 연구했다. 이 밖에 온실 시공, 사물인터넷(IoT) 관련 사업도 진행 중이다.

조광페인트는 창업주 고 양복윤 회장의 손녀 양성아 대표가 지난 2018년 취임해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조광페인트의 다음 먹거리는 신소재다. 조광페인트는 지난해 9월 전기·전자 소재 사업 부문을 떼어내 ‘CK이엠솔루션’이라는 자회사를 설립했다.

CK이엠솔루션은 ▲2차전지 ▲에너지저장시스템(ESS)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반도체 ▲드론 등 다양한 산업에 적용할 수 있는 방열 소재를 개발하고 있다. 충·방전 시 발생하는 열을 외부로 방출해 장치가 과열되지 않도록 하는 기술이다. 지난 2019년 전기·전자기기용 방열 접착제 개발을 끝냈다. 조광페인트 자체 합성수지와 첨단 소재를 응용했다. 지난해 10월과 12월 미국과 헝가리에 현지 법인을 세워 올해 3분기까지 공장 건설을 완료할 예정이다.

조광페인트 자회사 CK이엠솔루션 제품 사진. /조광페인트 제공

강남제비스코도 이 사업 진출에 시동을 걸고 있다. 강남제비스코는 창업주 고 황학구 회장의 손자 황익준 대표가 사업을 이끌고 있는데, 최근 전기차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 점에 주목해 전기차 배터리의 과열을 막는 방열 소재 개발을 추진 중이다.

전기차 배터리 커버에 쓰일 수지도 개발했다. 배터리 커버는 배터리를 보호하고 배터리에서 불이 났을 때 탑승자를 보호하는 기능을 하는데, 이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강도와 안정성이 높은 복합소재를 개발했다.

다만 수익성 개선은 과제로 남았다. 페인트업계가 추진하는 신사업은 아직 이렇다 할 실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노루그룹의 더기반은 2016년 창립 이래 계속해서 영업손실을 내다 지난해 처음으로 5억원가량의 영업이익을 냈다. 그룹사 내에서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약 1%다. 700%가 넘는 부채비율도 개선할 점이다.

조광페인트 역시 공장 신설 등 신사업 투자로 영업이익이 감소했다. 강남제비스코는 방열 소재 사업이 아직 개발 단계에 있어 매출액과 영업이익을 내려면 시간과 비용이 더 투자돼야 하는 상황이다.

페인트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 70년여 동안 페인트업계는 도료 중심으로 성장을 이뤄왔지만 이제 한계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 고부가가치 분야로의 사업 확대가 계속될 것”이라며 “다만 신사업 분야에서 이들이 얼마만큼의 장악력을 가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아직 신사업이 추진 단계인 만큼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