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방산기업들이 밀리테크(군사기술) 스타트업 투자 활동을 본격화하고 있다. 정부가 앞으로 315조원을 투입해 우리 군을 첨단무기 중심의 기술 집약형 구조로 개편할 계획인 만큼, 차세대 밀리테크를 선제적으로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최근엔 수백억원 규모의 투자펀드까지 조성하면서 장기적인 투자 토대까지 마련하고 있다.

15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한화시스템(272210)은 이달 초 군인공제회와 800억원 규모의 군사기술 벤처펀드를 조성했다. 한화시스템과 군인공제회는 각각 400억원을 출자해 앞으로 10년간 항공우주, 도심항공교통(UAM), 사이버보안 등 밀리테크 스타트업에 투자할 계획이다. 펀드 운용은 한화자산운용이 맡는다.

한화시스템의 국방 틸트로터 수직이착륙기./한화시스템 제공.

한화시스템은 지난해부터 국방기술 혁신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오픈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이란 기업이 자체 연구개발에만 머물지 않고 외부에서 혁신적인 미래기술이나 아이디어를 찾는 기술확보 방식을 말한다. 한화시스템 관계자는 “밀리테크를 민간 영역으로 확대하는 데 강점이 있다는 점에서 군인공제회의 선택을 받았다”며 “앞으로도 우수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지원해 기술 상용화 시기를 앞당길 것”이라고 말했다.

LIG넥스원(079550)도 지난 3월 유진투자증권과 업무협약(MOU)을 맺고 벤처투자펀드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앞서 LIG넥스원은 올해 초 주주총회에서 사업목적에 ‘신기술사업투자조합의 업무집행사원(GP)의로서의 업무’를 추가하기도 했다. 신소재, 항공우주, 정보통신기술(ICT) 등 다양한 분야에 투자를 집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LIG넥스원 관계자는 “이르면 상반기 중 펀드 조성이 완료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항공우주(047810)산업(KAI)은 작년 9월 스타트업 메이사에 지분 투자를 집행했다. 메이사는 위성 촬영 2차원(2D) 영상 데이터를 3D 지도로 만드는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이다. 업계에서는 KAI의 지분 투자를 두고 위성 이미지 분석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로 해석했는데, 실제로 지난달 KAI와 메이사의 합작 기업 ‘메이사 플래닛’이 출범했다. KAI는 메이사 플래닛을 통해 위성 이미지 분석 서비스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지난 4월 28일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에 개소한 소부대 과학화 전술훈련장에서 군사학 조교가 전술훈련체계(TAD)를 활용해 도시지역 공격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육군사관학교제공

업계에서는 방산기업이 스타트업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배경을 두고 ‘2022~2026 국방중기계획’을 꼽았다. 총 315조원이 투입되는 국방중기계획은 우리 군을 첨단무기 중심의 기술 집약형 구조로 정예화하고, 한반도 감시 체계와 탄도탄 방어역량 구축을 골자로 한다. 업계 관계자는 “국방중기계획의 핵심은 ‘딥테크(Deep Tech·원천기술 첨단기술)’ 확보”라며 “이에 방산기업들이 외부 투자를 통해 신기술을 선제적으로 차지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방산기업이 밀리테크 스타트업에 초기 투자를 단행해 기술 경쟁력을 키우는 것은 이미 글로벌 트랜드다. 세계 1위 방산업체 록히드마틴은 2억달러(약 2500억원) 규모의 에버그린펀드(투자 수익금이 원투자금과 함께 재투자되는 펀드)를 통해 인공지능(AI)·블록체인·무인자율·극초음속 분야 스타트업 43곳에 투자하고 있다. 세계 3위 방산업체인 보잉도 벤처 투자 전문조직인 ‘호라이즌X’를 통해 항공우주 분야에 투자를 집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