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원자재 가격이 뛰면서 펄프 값과 운송비가 오르자 제지업계가 잇달아 제품 가격을 올리고 있다. 업계는 수익성 악화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이지만, 가격 인상 효과 덕분에 올해 1분기 제지업계 실적은 급증했을 것으로 전망된다.

25일 제지업계에 따르면 인쇄용지 1, 2위 기업인 한솔제지(213500)무림페이퍼(009200)·무림P&P(009580)는 국내 인쇄용지 가격을 다음달 출고분부터 15% 인상할 예정이다. 올해 1월 7% 인상에 이은 두 번째 가격 인상이다. 두 업체는 지난해에도 두 차례에 걸쳐 할인율을 7~15% 줄이는 방식으로 인쇄용지 가격을 올렸다. 제지업계 상위권 기업이 가격을 올리자 유한킴벌리도 지난 15일부터 국내 화장지류에 대해 8%가량 가격을 올렸고, 깨끗한나라(004540)와 한국제지도 제품 가격 인상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솔제지 신탄진 공장. /한솔제지 제공

수출 제품 가격도 꾸준히 올랐다. 한솔제지는 지난 2월 산업용지와 인쇄용지를 각각 5%, 10%씩 올렸고, 특수지 가격은 2, 3월에 10%, 15%씩 인상했다. 무림페이퍼도 이달 북미 수출품에 대해 가격을 18%가량 올렸다.

업계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펄프, 석유 등 원자재의 값이 올라 제품 가격 인상이 불가피했다는 입장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미국 남부산혼합활엽수펄프(SBHK)의 톤(t)당 가격은 지난해 연말 급락한 뒤 올해 들어 1월 675달러, 2월 725달러, 3월 785달러로 기록됐다. 이달 가격은 840달러다. 4개월 연속 오름세가 이어진 가운데 3개월 만에 24%가 오른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인쇄용지는 60%~80%, 복사용지는 90% 가까이가 펄프로 구성돼 있다. 나머지 부재료는 종이를 코팅하는 데 쓰이는 옥수수 전분이나 라텍스 등”이라며 “펄프 수입량의 20%를 차지하는 러시아와 세계 최대 옥수수 수출국인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이어지면서 원료 수급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라텍스 가격도 연초보다 20%가량 올랐고, 핀란드 임업기업 UPM키메네 공장 파업도 펄프 가격 인상을 견인하고 있다.

그래픽=이은현

유가도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 수입 원유의 기준이 되는 두바이유의 배럴당 가격은 매달 말일 기준 1월 88.39달러, 2월 96.86달러, 3월 107.71달러를 기록했다. 특히 지난달 9일에는 127달러를 넘기며 최근 52주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달도 7~12일을 제외하곤 100달러를 넘긴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떨어질 줄 모르는 해운운임도 문제지만 고유가 때문에 경윳값이 치솟은 것이 국내 제품가를 올린 원인”이라고 말했다.

제품 제조부터 운송까지 비용 부담이 늘면서 수익성 악화를 막기 위해 불가피하게 가격을 올렸다는 것이 제지업계의 설명이지만, 우려와 달리 올해 업계 실적은 지난해보다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064850)에 따르면 무림P&P는 올해 490억원의 영업이익이 예상된다. 이는 지난해 영업이익(290억원)을 크게 웃돈 수치고, 2019년도 494억원 이후 최고다. 무림 P&P는 지난해 1분기 8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는데 이번 분기엔 70억원가량의 영업이익이 날 것으로 보인다.

한솔제지도 마찬가지다. 현대차증권(001500)에 따르면 한솔제지의 1분기 영업이익은 249억원으로 추정된다. 지난 2020년 2분기 이후 최대 영업이익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90억원)보다 31%, 직전 분기(140억원)보다 78% 많다. 특히 1분기 당기순이익은 160억원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직전 분기(2억원)보다 80배 많은 수준이다.

박종렬 연구원은 “1분기는 전 분기 부진을 만회하는 양호한 실적을 기록할 전망”이라며 “전 분기의 해상운임 상승분을 1분기에 각 용지별 판매가격에 전가하면서 이익 폭이 확대돼 수익성이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2분기에는 펄프 가격 상승이 원가에 반영되는 시기이고 액화천연가스(LNG), 전력료 등 원가 상승 요인이 있어 추가적인 영업이익 증가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원가 상승분을 판매가격에 전가하려는 노력이 지속될 것”이라면서도 “(한솔제지는) 해상운임의 안정세가 예상되는 하반기에 분기별로 300억원 규모의 영업이익을 달성할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