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030200)는 지난 17일 스타트업 ‘딥브레인AI’와 손잡고 KT의 인공지능(AI) 플랫폼인 기가지니를 가상인간(버추얼 휴먼)으로 만든다고 밝혔다. ‘AI 윤석열’을 만들어 주목 받은 딥브레인의 가상인간 개발 기술을 토대로 두 회사는 가상인간 외모에 KT의 AI 두뇌를 탑재한 이른바 ‘기가지니 인사이드’를 개발한다. 정해진 말을 구사하는 수준을 넘어, 사람과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가상인간을 고도화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상반기 중 키오스크(무인안내기) 형태로 구현해 연내 유통, 금융권, 호텔, 리조트 등으로 확산한다는 전략이다.
현대자동차는 가상인간 솔루션을 보유한 또 다른 스타트업 ‘클레온’과 가상인간 기반의 차량 내 비서 서비스 개발·테스트를 마치고 도입을 위한 막바지 준비 중이다. 차량 내 디스플레이에서 인간 형태로 구현된 개인비서가 날씨 검색부터 호텔·맛집 예약, 근처 명소 설명 등 비서 역할을 해주는 콘셉트다.
클레온 관계자는 “자율주행 시대가 다가오면서 차량이 이동수단을 넘어 ‘공간’으로 인식되면서 할 수 있는 게 많아져 서비스를 기획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클레온은 ‘빨간펜’ ‘구몬’ 같은 학습지를 보유하고 있는 교원그룹과 1만명의 서로 다른 방문교사를 가상인간으로 만드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코로나19로 본격화된 비대면(온라인) 교육 수요에 맞춰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때 교육을 제공하겠다는 취지다.
AI 기술을 활용한 가상인간 스타트업을 찾는 대기업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비대면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이에 따라 음성·채팅 위주였던 고객서비스(CS)를 시작으로 무인점포, 은행, 모빌리티, 엔터테인먼트 등으로 가상인간 적용 산업 범위 역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2020년 10조원 규모였던 가상인간 시장은 2030년 527조5800억원 규모로 연 46.4%의 높은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관측된다.
국내에서 이런 가상인간의 인기는 지난해 신한라이프가 광고모델로 내세운 가상 인플루언서 ‘로지’가 활동범위를 넓히며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 큰 기폭제가 된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 관계자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AI로 가짜 영상을 만드는 것은 유명 배우의 얼굴·표정 등을 활용해 포르노 등을 만드는 식의 ‘딥페이크(딥러닝+페이크)’로 지칭되며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다”면서 “이제는 모든 기업이 회사의 색깔을 잘 드러낼 수 있는 가상인간을 고민하고 있을 정도로 기술에 대한 분위기가 바뀌었다”라고 전했다.
스타트업의 기술이 갈수록 진화하면서 대기업이 가상인간을 제작·운영할 수 있는 비용도 낮아지고 있다. 상담원, 경비원, 속기사 등 분야에서 가상인간을 제작, 공급 중인 코스닥 상장사 마인즈랩은 오는 5월 보다 진화한 가상인간 ‘M2′를 공개할 예정이다.
M2는 2차원(2D) 영상뿐 아니라 3차원(3D) 방식으로 보여질 수 있도록 가상·증강현실(VR·AR), 홀로그램 등의 기술과도 연동시킨다. 지난해 3월 출시된 ‘M1′은 AI 가상 은행원의 형태로 계좌 개설이나 이체·송금, 금융상품 안내 등 업무를 도와주는 역할이었는데, M2는 인간을 도와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분야의 직업군으로까지 확장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회사 측은 기대하고 있다.
딥브레인AI는 가상인간 제작을 위한 실제 인물 촬영시간을 2시간으로, 제작 기간을 3~4주로 각각 단축해 기업들의 수요에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클레온은 초기 구축 비용(4500만원)이 들어가는 다른 경쟁사와 달리 월 10만원 수준으로, 가상인간을 제작할 수 있다는 점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가상인간 도입 열풍이 일시적인 유행이 아닌, 트렌드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연예인 등 유명인을 기업의 얼굴로 내세웠을 경우 스캔들을 일으키면 큰 리스크(위험요인)가 되는 만큼 ‘리스크 제로’이면서 브랜드의 개성을 안정적으로 24시간 운용할 수 있는 가상인간에 대한 기업들의 수요가 커지고 있는 것”이라면서 “가상인간은 또 다른 가상인간과의 협업(콜라보) 가능성, 향후 펼쳐질 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 선점도 할 수 있어 경제적 가치도 크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