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빌 게이츠의 소형모듈원전(SMR) 기업 ‘테라파워’에 지분 투자를 하기로 하면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빌 게이츠의 인연이 눈길을 끌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해 초 “탄소 중립은 달성 가능하다”는 빌 게이츠의 주장에 공개적으로 지지 의사를 밝혔고, 결국 넷 제로(Net Zero·배출하는 탄소량과 제거하는 탄소량을 더했을 때 순 배출량이 0 이되는 것) 실현 수단으로 빌 게이츠가 추진하는 SMR을 선택했다. 빌 게이츠 역시 수년 전부터 SK그룹의 백신 개발 사업에 투자해 왔다.

12일 SK(034730)㈜와 SK이노베이션(096770) 등 SK그룹은 미국 SMR 선도 기업 테라파워에 지분 투자를 결정 짓고 세부 조건을 최종 조율 중으로, 조만간 계약이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탄소 배출량이 적고 발전 효율이 높아 ‘꿈의 원전’으로 불리는 SMR은 SK그룹의 넷 제로 목표를 실현하는 주요 수단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최 회장은 2030년까지 세계 탄소 배출 감축 목표량의 1%를 책임지겠다며 “에너지와 환경을 통합한 새로운 비즈니스 지도를 고민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최태원(왼쪽) SK그룹 회장과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최 회장이 테라파워 투자를 결정한 것은 빌 게이츠와 탄소중립에 대한 생각의 궤가 맞닿아있는 데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빌 게이츠는 작년 2월 출간한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 저서를 통해 “2050년까지 지구촌은 온실가스 배출량 510억톤(t)을 제로(0)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후재앙을 막기 위해 탄소중립을 이루지 못하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보다 더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기술 혁신을 통해 탄소중립 비용을 낮춰야 한다고 했다. 그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이 SMR이다.

최 회장 역시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넷 제로를 띄우면서 친환경 사업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는 작년 4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자격으로 참석한 ‘탄소중립 산업전환 추진위원회’ 출범식에서 “빌 게이츠도 ‘제로탄소가 달성할 수 있는 목표라고 믿는다’고 했고, 기업인으로서 그의 말을 지지한다”며 “우리가 힘을 합치면 탄소제로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고, 우리 기업들도 해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했다. “기후변화를 이대로 두면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보다 훨씬 더 큰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며 빌 게이츠와 같은 견해를 드러내기도 했다.

빌 게이츠는 SK그룹의 행보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 왔다. SK케미칼(285130)과 자회사 SK바이오사이언스(302440)의 백신 개발 사업이 대표적이다. 2014년 SK케미칼이 국제백신연구소(IVI)와 함께 개발하는 장티푸스 백신 임상 연구에 빌&멀린다게이츠재단(BMGF)이 490만달러(약 61억원)을 지원한 것이 시작이었다. 2020년에는 SK바이오사이언스가 개발하는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 ‘GBP510′에 360만달러(약 45억원), 1000만달러(약 124억원)를 BMGF가 후원하는 국제민간기구를 통해 간접 지원하기도 했다.

빌 게이츠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접 서한을 보내 SK바이오사이언스의 백신 기술력을 언급하기도 했다. 빌 게이츠는 2020년 문 대통령에게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협력 강화를 요청하면서 “‘SK바이오사이언스가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성공하면 내년 6월부터 연간 2억개의 백신을 생산하게 된다”며 “한국이 민간분야 백신 개발의 선두에 있다”고 치켜세웠다.

최 회장은 1998년부터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다보스 포럼)’에 꾸준히 참석해 세계 각국 정·재계 관계자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해 왔는데, 빌 게이츠 역시 다보스 포럼에 자주 참석했다. 두 사람은 ‘아시아판 다보스포럼’이라고 불리는 중국 보아오 포럼에서도 2007년 참석자 명단에 공동으로 이름을 올린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