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혁 현대코퍼레이션(011760) 회장이 벤처기업 투자에 도전한다. 종합상사에서 종합사업회사로의 체질 전환을 추진하는 정 회장은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설립을 통해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정 회장은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동생인 고 정신영씨의 외아들이다.

18일 재계에 따르면 현대코퍼레이션은 오는 30일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정관 변경을 통해 사업 목적에 ‘신기술사업회사 및 벤처캐피털 등에 대한 투자 및 관련사업’을 추가할 계획이다. 현대코퍼레이션 관계자는 “벤처캐피털 설립과 관련해 현재 금융당국의 심사를 받고 있다”며 “승인에 앞서 선제적으로 사업 목적에 추가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몽혁 현대코퍼레이션 회장. /현대코퍼레이션 제공

현대코퍼레이션은 금융당국의 승인이 떨어지는 대로 CVC의 일종인 신기술사업금융사를 설립하겠다는 방침이다. 신기술사업금융사는 신기술을 개발하거나 이를 응용해 사업화하려는 기업에 투자 또는 융자 지원을 해주는 금융회사를 말한다. 사업 개시일 7년 이내의 중소기업에 출자만 하는 창업투자회사와는 달리 신기술사업금융사는 관련 제한이 없는 게 특징이다.

아직 정관 변경은 이뤄지지 않았으나, 현대코퍼레이션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외부 투자에 나서는 모양새다. 올해 초에는 이동형 친환경 발전기 ‘인디고’를 서비스하는 기후테크 스타트업 이온어스의 프리 시리즈A 투자에 참여했다. 정관 변경과 금융 당국 승인을 통해 신기술사업금융사 설립만 완료되면, 현대코퍼레이션의 외부 투자 활동에 대한 보폭은 더 넓어질 전망이다.

현대코퍼레이션이 벤처투자에 나선 배경에는 종합사업회사로의 전환과 관련이 있다. 정 회장은 지난달 열린 글로벌 전략회의에서도 임직원들에게 ‘스타트업 정신’을 강조한 바 있다. 작은 사업이라도 잘 성장시킨다면 10년 뒤 회사를 이끄는 미래 먹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코퍼레이션은 수년째 1% 안팎의 연간 영업이익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새로운 먹거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현대코퍼레이션이 일본 쿠로마타에 세운 태양광발전 단지 모습. /현대코퍼레이션 제공

현대코퍼레이션은 올해 신기술사업금융사 설립 외에 태양광 폐모듈 재활용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이번 주총에서 ‘폐자원을 활용한 친환경 리사이클 사업 및 관련사업’도 사업 목적에 추가할 예정이다. 태양광 폐모듈은 알루미늄과 유리 등으로 구성돼 재활용 가치가 높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얼라이드마켓리서치에 따르면 태양광 패널 재활용 시장은 2020년 1억3970만달러(약 1700억원) 규모에서 오는 2030년 4억7860만달러(약 5800억원)로 3배 이상 성장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현대코퍼레이션이 일본을 중심으로 태양광 폐모듈 재활용 사업을 추진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대코퍼레이션은 2019년부터 일본에 재팬, 미마사카, 유메사키, 에히메 등 4개 법인을 세우고 총 5개의 태양광발전 단지를 운영하고 있다.

현대코퍼레이션 관계자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이미 20~30년 전부터 태양광 발전 사업을 진행해왔기 때문에 폐모듈 공급이 충분하다”며 “일본 뿐 아니라 미국 태양광 폐모듈 사업 진출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코퍼레이션이 해외에서 기반을 쌓은 뒤, 향후 국내 태양광 폐모듈 재활용 시장에도 진입할 전망이다. 한국태양광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태양광 폐모듈은 2023년 988톤(t)에서 2033년 2만8153t으로 10년 새 28.5배 급증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