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현지 시각)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인 리야드에서 열린 첫 기술 박람회 ‘LEAP 2022′ 행사장. 사우디 통신사 모바일리(Mobily)의 부스에는 미국 전기차 업체 루시드의 자동차가 전시돼 있었다. 머리에 쉬마그(Shemagh)를 두르고, 전통복장 토브(thawb)를 입은 사우디 남성들이 루시드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현장에는 루시드 직원 6명이 응대를 하고 있었고 관람객이 몰리면서 줄이 늘어서기도 했다.

라야드 칼라드 무테르(Raid Khalid Mutter) 모바일리(Mobily) 소매부문 제너럴 매니저(GM)는 “루시드와 합작사업을 추진하고 있지 않지만, 사우디에서도 친환경차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전기·전자장비의 연결도 중요해지는 만큼 공간을 할애해 루시드의 차를 전시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3일(현지시각)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LEAP 2022' 관람객들이 전시된 루시드 자동차를 살펴보고 있다. /권오은 기자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에서도 친환경차(전기차·수소차)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친환경차 관련 기반시설은 아직 거의 갖춰지지 않았지만, 사우디 정부가 석유 중심의 경제구조를 개혁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비전 2030′과 탄소 감축 목표에 따른 지원정책을 제시하면서 성장 가능성이 커졌다.

리야드 거리에선 현대차(005380)기아(000270)의 자동차를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개인 승용차뿐만 아니라 경찰차나 택시 등에서도 익숙한 현대차·기아 로고를 발견할 수 있었다. 현대차 쏘나타를 타는 칼리드 카디르(Khalid Kadir·31)씨는 “현대차와 기아 모두 가격이나 유지비가 경제적이고 편안한 것으로 사우디에서 유명하다”며 “지금 차도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히잡을 두른 여성들이 현대차의 코나나 기아의 쏘넷을 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사우디는 도시 밖으로 나가면 비포장 도로가 적지 않아 스포츠유틸리티차(SUV)를 선호하는데, 2018년 사우디에서 여성의 자동차 운전이 허용된 이후 소형 SUV가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지난 3일(현지시각)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현대차 코나가 주차돼 있다. /권오은 기자

승용차는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품목이다. 한국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지난해 사우디에 총 194억2200만달러(약 23조원)를 수출했는데, 이 가운데 33%(64억달러·약 7조7000억원)가 승용차였다. 한국의 승용차 수출 규모도 MENA(중동·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사우디가 가장 크다. 2위 아랍에미리트(UAE)와는 5배 넘게 차이가 난다.

현대차·기아는 한국, 인도, 중국 등에서 만든 차를 사우디로 수출해 판매하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 사우디에 6만3070대를, 기아는 2만3497대를 팔았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반도체 수급난 등으로 최근 5년 가운데 가장 적은 수출 실적이었지만, 일본 도요타에 이어 점유율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인기 차종은 현대차의 아반떼(1만7029대)와 엑센트(1만2368대), 기아의 페가스(9551대) 등으로 모두 내연기관차다. 현대차·기아가 사우디에 수출한 친환경차는 2020년 사우디 국영석유회사 아람코(aramco)에 시범 운영용으로 판매한 수소전기차 넥쏘 2대와 수소전기버스 일렉시티 2대가 전부다.

리야드 시내에서는 전기차를 찾기 어려웠다. 차양막이 늘어선 주차장 한 켠에 마련된 전기차 충전소는 거의 비어있다. 빌딩 주차장에 마련된 전기차 충전소의 경우 사우디 휴일인 금요일에는 아예 수요가 없어 문을 닫는다고 한다.

지난 4일(현지시각)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현대차 쏘나타와 엑센트가 알 사프와의 택시로 영업 중이다. /권오은 기자

하지만 최근 현지 휘발유 가격이 치솟고 사우디 정부가 친환경차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aramco) 등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사우디의 고급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2.18리얄(약 700원)을 기록했다. 2000년대 이후 사우디의 휘발유 가격이 평균 1리얄(약 320원) 안팎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많이 오른 것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KOTRA) 리야드무역관 관계자는 “국내 휘발유 가격과 비교하면 사우디 휘발유 가격이 저렴하게 느껴지겠지만 현지에선 휘발유 가격이 정말 많이 비싸졌다고 말한다”며 “주변에서 경제적인 자동차를 알아본다는 이야기를 듣는다”고 말했다.

사우디 정부는 2030년까지 리야드 내 차량의 30% 이상을 전기차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리야드의 인구는 현재 700만명 수준인데, 도시 확장·개발에 따라 2030년까지 2배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또 비전 2030에 따라 5000억달러(약 600조원)를 투자해 조성하는 신도시 ‘네옴(Neom)’은 100% 신재생에너지 자원만 사용하도록 설계됐다. 네옴에 100만명 이상이 거주할 것으로 사우디 정부는 내다보고 있다. 단순하게 계산하면 친환경차 이용인구가 앞으로 600만명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란 뜻이다.

사우디의 친환경차 시장이 성장하려면 인프라 조성 등 갈 길이 멀다는 게 완성차 업계의 주된 평가지만 성장성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내다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사우디의 친환경차 시장은 첫발을 떼기 위해 준비하는 단계로 관련 인프라와 사우디 정부의 지원 정책이 분명해져야 한다”면서도 “사우디 정부가 수소 등의 산업 육성에 관심이 큰 만큼 앞으로 친환경차 시장이 성장할 가능성은 큰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