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시장을 바탕으로 고속 성장을 이어온 중국 배터리 업체 CATL이 최근 자국 내 입지를 위협받고 있다. 중국 배터리 업체들의 기술력이 상향 평준화하면서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CATL의 의존도를 낮추고,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해 한국 배터리 업체들과 손을 잡고 있어서다. 올해부터 중국 정부는 전기차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폐지할 예정이어서 K-배터리의 중국 진출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21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중국의 3대 전기차 스타트업 샤오펑은 최근 주요 배터리 공급처를 CATL에서 CALB로 변경했다. 배터리 업계의 ‘다크호스’로 평가받는 CALB는 현재 시장의 주류인 니켈·코발트·망간(NCM) 등 삼원계 리튬이온 배터리와 중국 업체들의 주력 상품인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모두 생산하고 있다. 2018년 처음 제품을 출시한 후발주자지만, 공격적인 증설로 지난해 말 기준 중국 시장 점유율을 5.9%로 끌어올렸다. CATL(52.1%), BYD(16.2%)에 이어 3위다.

샤오펑은 SK이노베이션(096770)의 배터리 자회사 SK온과 지난해 9월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중국 배터리 업계에서는 정위췬 CATL 회장과 허샤오펑 샤오펑 창업자가 배터리 공급 문제로 고성을 주고받았다는 불화설까지 나돌고 있다.

CATL과 배터리 협업을 이어왔던 니오 역시 최근 BYD와 배터리 공급 계약을 논의하고 있다. 니오는 샤오펑·리오토와 함께 중국 전기차 스타트업 3인방으로 꼽힌다. CATL의 주요 고객사였던 광저우자동차그룹 역시 2020년 말부터 출시한 신규 전기차 모델에 CATL의 배터리를 탑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배터리 내수시장 경쟁이 격화하면서 업체간 견제도 심해지고 있다. CATL은 지난해 7월 CALB를 상대로 특허법 위반 소송을 제기했다. CATL은 자사의 발명 및 실용신안 특허를 침해한 CALB 배터리가 수만 대의 전기차에 탑재됐다고 주장하며 법원에 CALB 배터리 판매 금지를 요청했다.

중국 푸젠성 닝더시의 CATL.

글로벌 전기차 업체들도 CATL 비중을 줄이는 추세다. 글로벌 전기차 1위 테슬라와 BYD의 배터리 협업이 공식 발표만 앞두고 있다는 전망이 중국 배터리 업계에서 나온다. 그동안 테슬라는 저가형 모델에 CATL의 LFP 배터리를 채택했었다. 삼성SDI(006400)와 CATL 제품을 주로 사용하던 BMW는 중국 EVE에너지를 신규 배터리 공급 업체로 채택했다.

CATL의 입지가 흔들리는 것은 중국 업체의 배터리 기술력이 상향 평준화됐기 때문이다. CATL은 그동안 생산량과 기술력에서 자국 내 경쟁 업체를 압도했다. 그러나 중국 내수 전기차 시장이 고속 성장하자 경쟁 업체들의 기술력도 빠르게 CATL를 따라잡았다. 중국 전기차 업체들은 CATL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여러 업체의 배터리를 채택하고 있다. CATL의 내수 시장 점유율은 2020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50%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점유율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중국 전기차 업체들은 CATL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 배터리 물량이 부족해 전기차 생산에 차질을 빚는 일이 많았다”며 “전기차 기업들이 공급 라인을 다각화하는 가운데 일부 업체는 CATL과의 불화설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CATL의 자국 내 위상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중국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의 단계적 폐지를 발표하면서 국내 기업의 중국 시장 진출 가능성도 열렸다. 중국 재정부는 최근 ‘2022년 신에너지 차량 재정 보조금 확대 적용 정책에 관한 통지’를 발표했다. 핵심 내용은 전기차 구매 시 지급하는 보조금을 올해 말까지만 지급하고, 올해 보조금 액수 또한 전년 대비 30% 감액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중국 정부는 CATL, BYD 등 자국 업체에서 생산된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키워왔다. 업계에서는 이번 보조금 폐지로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내수 제품에도 한국 배터리를 채택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이 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혁진 SK증권(001510) 연구원은 “내년 중국 전기차 시장이 급랭해 내수 비중이 높은 CATL 등은 실적 쇼크가 예상된다”며 “중국 보조금 정책 변화로 중국 업체들은 해외 시장에서 저가 수주 경쟁을 벌이는 반면 LG에너지솔루션을 포함한 한국 배터리 업체는 수혜를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