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어두웠던 코로나 터널을 뚫고 ‘위드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숙박업을 비롯한 국내 관광산업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인을 상대로 하는 국내 도심 공유 숙박은 불법으로 남아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한국식 규제로 전 세계 어디서든 사용할 수 있는 숙박 공유 서비스를 한국인이 한국에서는 이용할 수 없는 것이다.

현행 관광진흥법에 따르면 도시에 거주하는 내국인이 내국인을 대상으로 공유 숙박업을 하면 불법이다. ‘외국인이 한국의 가정집을 체험할 수 있게 해주자’는 명분으로 내국인을 영업 대상에서 아예 배제했기 때문이다. 외국인에게 방을 빌려주는 것은 괜찮지만, 농어촌 민박과 한옥 체험 숙소를 빼고는 내국인에게 방을 빌려주면 안 된다.

법 개정 움직임은 수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정부는 2017년부터 “현재 외국인 대상으로만 가능한 도시 지역 내 숙박 공유를 내국인에게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기존 숙박업계의 반발과 정부 부처 간 이견으로 진전이 없는 상태다. 국회에서도 2016년부터 총 4차례 공유 숙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국회 해산과 함께 폐기됐다. 지난 3월에는 더불어민주당 내 스타트업 규제 혁신을 위한 모임인 ‘유니콘팜’ 소속 의원들이 공유 숙박업 상 내국인 영업을 연간 180일까지 허용하는 ‘관광진흥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이 역시 국회에 계류 중이다.

조선비즈는 지난 15일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공유 숙박업 개정안을 발의한 장철민 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관련 전문가들과 공유 숙박 실태와 대책을 논의하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선 “숙박업 발전을 위해서는 현실에 부합하는 법 개정을 통한 내국인 공유 숙박 양성화가 시급하다”는 필요성이 공유됐다.

조선비즈가 지난 15일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개최한 ‘위드코로나 시대, 공유 숙박 어디로 가야 하나' 토론회. 왼쪽부터 장철민 민주당 의원, 김영규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정책실장, 고영대 세종대 호텔관광경영학과 교수, 정대준 외국인관광도시민박업협회 사무국장, 구철모 경희대 컨벤션경영학과 교수. /조선비즈

◇판매자·소비자 모두 불법 인지 못 하는 경우 허다

패널들은 공유 숙박 규제가 현실과 과도하게 동떨어져 있어 오히려 범법자를 양산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고영대 세종대 호텔관광경영학과 교수는 “현 법체계에서는 공유 숙박에서 내국인과 외국인을 구분해서 받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우리나라는 공유 숙박 호스트(운영자)가 투숙자의 신분증을 요구할 권한이 없는데 정작 법은 내국인과 외국인 숙박을 분리해 규제하니 불법을 촉진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현실과 괴리된 한국식 규제는 이미 사문화(死文化)된지 오래다. 2018년 기준 국내에서 에어비앤비를 이용한 고객 294만명 중 69%(202만명)가 내국인이었다. 사실상 주 고객은 한국인인 것이다. 구철모 경희대 컨벤션경영학과 교수는 “공유 숙박이 보급된 220개국 중 내국인의 공유 숙박 이용을 금지한 건 우리나라뿐”이라며 “규제가 현실에 한참 뒤처져 있으면 사업자와 이용자 모두 법을 지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무허가 공유 숙박 업체가 성행하면 피해는 결국 소비자의 몫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김영규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정책실장은 “이미 상당히 많은 내국인이 공유 숙박을 이용 중인데, 문제는 운영자 역시 불법인지도 모르고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라고 했다. 그는 “판매자조차 자신이 불법으로 영업을 하는 줄 모르는 상황에서 문제가 생기면 누가 책임을 지겠느냐”며 “내국인 공유 숙박업 자체를 제도화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조선비즈가 지난 15일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개최한 ‘위드코로나 시대, 공유 숙박 어디로 가야 하나' 토론회에서 발의하고 있는 김영규(오른쪽)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정책실장과 장철민 민주당 의원. /조선비즈

◇개정안은 수년째 논의만… “다른 족쇄 채우기 전 양성화 필요”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내국인 도심 공유 숙박 사례를 이해당사자 간 상생안을 도출하는 한걸음 모델로 지정했다. 지난 6월 기재부는 업계 논의를 거쳐 내국인 숙박 일수를 180일로 제한하는 내용의 합의안을 내놨다. 현재 이 합의안은 다시 문화체육관광부로 넘어가 수년째 민‧관 협의체 회의를 거치고 있다. 문체부 관계자는 “여태까지 두 차례 회의를 진행했으나 아직 이해당사자 간 논의점이 많아 해를 넘겨 회의가 이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정대준 외국인관광도시민박업협회 사무국장은 “2017년부터 민‧관 협의체 회의에 참석해왔지만, 정부는 규제를 개선하겠다면서 또 다른 제약을 붙여 논의가 지지부진했다”면서 “이번 개선안에는 연 180일 영업 규제를 붙여 공유 숙박업계의 반발을 샀고, 또 최근에는 정부 측에서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는 데 주택 공유 숙박을 허용하는 게 맞느냐는 우려가 제기돼 논의가 길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연간 공유 숙박 영업일을 제한하는 것은 또 다른 족쇄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구 교수는 “공유 숙박 운영자가 연 180일을 지켰는지 정부가 일일이 확인하는 건 불가능”이라고 말했다. 결국 멀쩡한 공유 숙박 운영자를 대량으로 범법자로 만들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정 사무국장은 “가장 중요한 건 공유 숙박을 양성화하는 것인데, 무조건 막고 보는 식의 규제를 더 하면 영세 공유 숙박업체들은 경쟁도 하지 못한 채 시장에서 도태된다”며 “영업을 막기 전에 안전과 위생 등 소비자를 보호하는 실질적인 규제를 도입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공유 숙박이 보급된 세계 220국 중 주인이 실거주하는 집을 공유하는데 영업일을 제한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 고 교수는 “다른 나라에서 영업일 제한은 빈집을 공유 숙박으로 활용하는 경우에만 적용된다”며 “빈집 공유가 아예 금지된 한국과는 사정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에서는 과연 영업일 제약을 고민할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서울 등 일부 도시를 제외하면 관광 산업 발전이 더디다”면서 “정부가 앞장서 각종 제약을 덧붙이는 건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일”이라고 했다.

이 같은 지적에 장 의원은 “법안을 발의한 민주당 의원들은 모두 신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규제는 철폐돼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시장은 빠르게 바뀌고 있는 와중에 논의만 오래 한다고 합리적인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기존 숙박업계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