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해상운임 급등으로 수출 비용이 늘어난 상황에서 플라스틱 원료인 나프타(Naphtha)와 액화석유가스(LPG) 가격까지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수요만 충분하다면 원재료 가격 등 비용을 판매가격에 반영할 수 있지만, 최근 석유화학제품 공급이 늘어나고 있어 쉽게 가격을 올리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22일 한국석유화학협회에 따르면 지난 15일 기준 미터톤당 나프타 가격은 전주(10월 8일·767달러) 대비 2.3% 오른 785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2014년 10월 3일(820.75달러) 이후 최고치다. 나프타는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389달러에 거래됐지만 1년 새 102% 급등했다. 특히 지난 9월 초(676달러) 이후 현재까지 16% 이상 가파르게 상승했다.

그래픽=손민균

나프타는 원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생성되기 때문에 국제유가 흐름에 따라 가격이 좌우된다. 국제유가는 세계적인 원유 공급난 때문에 배럴당 80달러를 넘어서는 등 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 중이다. 앞으로 한동안 국제유가 상승세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주요 산유국인 이라크의 이산 압둘자바르 석유장관은 20일(현지시각) “내년 상반기에는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나프타 가격 역시 상승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통상 나프타 가격 상승은 석유화학업계의 악재로 꼽힌다. 나프타는 플라스틱 생산에 사용되는 원료 중 70%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나프타를 이용해 에틸렌 등 기초유분을 만들고, 이를 이용해 플라스틱과 합성섬유, 고무 등을 만드는 식이다. 석유화학업계 입장에서는 가장 기초 재료인 나프타 가격이 저렴해야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하반기 들어 대부분의 석유화학사는 고객사와 협의를 통해 나프타 가격 상승분을 판매가격에 반영했을 것”이라면서도 “이때도 상승분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는데, 그 이후로도 가격이 계속 올라 상황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나프타 가격 상승분을 판매가격에 온전히 전가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최근 석유화학 수급 상황과 관계가 있다. 업계 관계자는 “수요가 많고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원가를 그대로 판매가격에 반영할 수 있고, 이 경우 매출과 이익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이번 하반기는 수요는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지만 에틸렌 등의 공급이 늘어나고 있어 석유화학사 입장에선 제품가격을 크게 올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올해 4분기부터 내년 1분기까지 글로벌 에틸렌 설비 증설 용량 600만톤(t)이 대기 중이다.

나프타 가격 상승에 따른 위험을 줄이기 위해 석유화학업계는 수년 전부터 원료 중 나프타 비중을 낮추고 프로판(LPG) 비중을 높이기 위해 관련 설비를 꾸준히 확충해왔다. LPG 역시 원유 정제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만큼 국제유가를 따라가지만, 미국 셰일가스 등이 보급되면서 LPG 가격이 떨어져 나프타 대비 수익성이 높아졌다. 이에 롯데케미칼(011170)LG화학(051910), 한화토탈 등 석유화학기업들은 2~3년 전부터 LPG를 혼합할 수 있는 설비에 꾸준히 투자해왔다.

그러나 최근 LPG 가격까지 오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국제 LPG 가격(프로판 기준)은 10월 들어 톤당 800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5월까지만 해도 495달러에 불과했는데, 5개월 만에 60% 상승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원료 다변화가 맞는 방향이지만, 최근 나프타와 LPG 모두 가격이 높아져 수익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수출 물류비 상승으로 고심하던 차에 원료비까지 올라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