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4위 완성차 업체 스텔란티스의 북미 전기차 배터리 물량을 한국 배터리가 싹쓸이했다. LG에너지솔루션에 이어 삼성SDI(006400)까지 잇달아 스텔란티스와 합작사 설립을 확정했다. 이를 계기로 LG에너지솔루션은 GM 리콜 사태로 발생한 품질 논란을 잠재울 수 있게 됐고, 삼성SDI는 북미 진출 막차를 탔다는 평가가 나온다.

19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삼성SDI는 최근 스텔란티스와 전기차 배터리 합작사 설립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은 것으로 전해졌다. 양사는 이번 업무협약을 바탕으로 미국 내 전기차 배터리 생산 공장 건설에 돌입할 계획이다. 구체적인 투자금액과 합작공장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최소 조(兆) 단위 이상을 투자해 연간 10~20기가와트시(GWh) 규모 공장을 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합작법인의 위치와 준공 시기 등 세부 내용은 추가 협의를 통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스텔란티스 지프의 플러그인하이브리드 SUV '랭글러 4xe'./스텔란티스코리아 제공

이로써 스텔란티스의 북미 전기차 배터리 물량은 한국 배터리 기업이 모두 수주하게 됐다. 전날 LG에너지솔루션은 이달 중 스텔란티스와 북미에 연간 40GWh 규모 전기차 배터리 셀·모듈 생산 능력을 갖춘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40GWh는 고성능 순수전기차 기준으로 매년 60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투자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약 4조원으로 예상한다. LG에너지솔루션 물량 40GWh와 삼성SDI의 최대 20GWh를 합하면 스텔란티스의 전체 북미 물량에 육박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096770)과 단일 계약을 체결한 GM, 포드 등과 달리 스텔란티스가 복수의 배터리 공급사를 선택한 것은 스텔란티스의 기업 특성과 연관돼 있다. 스텔란티스는 이탈리아와 미국이 합작한 자동차 업체 ‘피아트크라이슬러(FCA)’와 프랑스 자동차 업체 ‘푸조시트로엥(PSA)’이 합병해 올해 1월 출범한 회사로, 산하에 14개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스텔란티스의 차종이 많다보니 필요한 배터리 타입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당초 삼성SDI가 스텔란티스 북미 주요 파트너로 유력하게 거론되던 상황을 LG에너지솔루션이 뒤엎은 데 대해 업계는 놀라움을 표하고 있다. 그룹 차원에서 수익성을 따지며 결정을 미루는 사이 LG에너지솔루션이 뛰어들었다는 후문이다.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 가석방 뒤인 지난 8월 삼성이 내놓은 240조원 규모 투자 계획에는 배터리 공장 신설 계획이 빠져있었다. 업계는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이 지난 9월 인재 확보 등을 위해 미국 출장길에 올랐을 때 스텔란티스 측과 접촉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스텔란티스는 세계 주요 완성차 업체 중에서도 전동화 계획을 늦게 수립한 편”이라며 “삼성SDI의 투자 결정이 늦어지는 것을 마냥 기다리기 어려웠던 차에 LG에너지솔루션이란 대안이 등장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LG에너지솔루션 입장에서 스텔란티스와의 합작은 최근 GM 리콜 사태를 만회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몸값을 올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인만큼 최선을 다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SDI 입장에선 주력 물량을 LG에너지솔루션에 내주긴 했지만 잔여 물량을 확보하면서 북미 진출 막차를 탔다는 평가가 나온다. 스텔란티스는 GM, 포드에 이어 미국에서도 시장점유율 3위를 확보하고 있다. 여기에 ‘제2의 테슬라’로 불리는 전기차 스타트업 리비안에도 배터리를 공급 중이다. 리비안 물량이 어느정도 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스텔란티스와 리비안 공급량을 합하면 북미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톱3 업체와 합작 관계를 맺지 못하면 이들의 물량을 수주하기 어려울 수 있는데, 그런 면에서 삼성SDI는 막차를 탔다”며 “2025년 (7월)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이 발효되기 전까지 미국에 공장을 짓고 생산을 시작해야 관세 혜택을 받을 수 있었는데 그 마감시한도 지킬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