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연말까지 공공요금을 최대한 동결하겠다고 발표한 지 하루 만에 산업통상자원부가 연내 도시가스 요금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공공요금을 놓고 부처 간 갈등이 표출되자 가운데에 낀 한국가스공사(036460)도 난감한 상황이다. 도시가스 원료 가격이 급등한 만큼 요금 인상이 시급하지만, 부처 간 정책 조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충분한 인상이 어려울 수 있는 것은 물론 인상 시기마저 놓칠 수 있어서다.

4일 정부에 따르면 기재부는 지난달 29일 물가관계차관회의를 열고 “어려운 물가 여건을 감안해 이미 결정된 공공요금을 제외하고 나머지 공공요금은 연말까지 최대한 동결하는 것을 기본원칙으로 한다”고 밝혔다. 최근 인상이 결정된 전기요금 외에 올해 공공요금 인상은 없다는 의미다. 최근 산업부와 가스공사의 도시가스 요금 인상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앞서 산업부와 가스공사는 오는 11월 도시가스 요금의 인상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기재부에 전달한 바 있다.

그러자 하루 뒤인 30일 산업부가 에너지 현안 정례 백브리핑에서 “물가 관리 차원에서 9월분 도시가스 요금을 동결하기로 했지만 원료비 인상이 계속되며 누적되는 압박이 커지고 있다”며 기재부에 정면 반박했다. 산업부는 “물가당국의 입장을 이해하지만 전기요금이나 가스요금은 지금 부담할지, 나중에 부담할지의 문제이지 언젠가는 부담해야 하는 것”이라며 “적절한 시점에 요금 인상에 대해 다시 협의할 계획이고, 연내 요금 인상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가스공사 본사 사옥./한국가스공사 제공

당장 이달 말 11월 도시가스 요금 조정을 앞둔 가스공사는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다. 가스공사는 그 어느 때보다 요금 인상이 절실한 상황이다. 가스공사 역시 한국전력(015760)과 마찬가지로 연료비가 요금에 반영되는 ‘연료비 연동제’를 시행 중인데, 동북아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지표인 JKM은 지난해 7월 100만BTU당 2.56달러에서 지난달 27.49달러로 10배 넘게 올랐다. 반면 정부는 지난해 7월 주택용 도시가스 요금을 11.2%, 일반용 요금을 12.7% 인하한 이후 15개월째 동결 중이다.

연료비가 오른 만큼 도시가스 요금이 조정되지 않으면 이는 가스공사의 미수금으로 잡힌다. 미수금은 가스공사가 수입한 LNG 대금 중 요금으로 덜 회수된 금액을 뜻하는데, 늘어난 미수금은 가스공사의 이자 부담으로 이어지고 결국 장기적으로 도시가스 요금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산업부와 가스공사가 언제까지나 요금을 눌러놓을 수는 없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가스공사의 미수금은 이미 1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부처 간 갈등이 장기화될 경우 도시가스 요금 인상도 원활하게 진행되기 어려울 수 있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부처 간 의견 조율이 단기간에 이뤄지지 않을 경우 요금 조정이 다음 시기로 넘어갈 수도 있고, 조정된다 해도 양측 입장을 고려해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낮은 수준에서 조정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에너지 업계 관계자 역시 “에너지 요금은 연료비 변동폭을 기반으로 산정돼야 하지만, 정책 의사결정 과정에서 다양한 변수가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도시가스 요금이 정상화되지 않는다면 가스공사 재무상태도 나빠질 수밖에 없다. 올해 상반기 가스공사의 매출액은 12조552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조624억원보다 4.1% 늘었다. 그러나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오히려 8623억원에서 8189억원으로 5% 감소했다. 가스공사는 “유가상승에 따라 해외종속법인 이익이 증가했지만, 발전용 공급비 차등요금제가 폐지되는 등 공급비 회수액이 감소하면서 영업이익이 줄었다”고 설명했다.